하회별신굿의 민중적 성격

○ 양반의 지체와 선비의 학식에 대한 조롱

하회탈춤에는 양반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양반과 선비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양반은 지체가 높다는 것을 자랑하고 선비는 학식이 많다는 것을 내세운다. 자신이 사대부의 자손이고 할아버지가 문하시중이었다고 떠벌리는 양반 앞에서 선비는 자신이 팔대부의 자손이고 문상시대의 아들이라고 받아친다. 그리고는 팔대부는 사대부의 갑절이고 문상시대는 문하시중보다 높고 크다고 강변하다. 반면에 양반은 사서삼경을 읽었다고 으스대는 선비에게 팔서육경을 읽었노라고 응수한다. 서로 한 번씩 장군멍군을 주고받는 가운데 그들의 본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체 높은 가문과 유교 경전에 대한 지식은 피지배집단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문과 학식은 선비를 포함한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의 구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결정적 기준이다. 그 두 기준에 의해서 양반과 비양반이 구분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과 선비의 설전을 통해서 그들의 가문과 학식의 허구성이 파헤쳐지고 만다. 특히 육경을 팔만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의 안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의 새경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초랭이와 그것에 맞장구치는 이매 앞에서 양반과 선비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양반과 선비를 두고 벌어지는 이와 같은 조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하나의 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회탈춤에서의 양반에 대한 조롱은 바로 금기의 위반인 것이다.

○ 특권층의 허구적 윤리성에 대한 폭로

또 다른 금기의 위반은 성(性)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중이 각시 또는 부네가 소변을 보는 모습을 훔쳐보다가 소변 본 자리의 흙을 움켜쥐고 냄새를 맡는 장면은 성 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주자학에서는 인간의 다양한 본성을 도덕적 본성과 육체적 욕망으로 이분하고 도덕적 본성의 확충과 아울러 육체적 욕망의 억제를 요구한다. 성의 욕망 또한 절제되어야 할 욕망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유교문화 속에서의 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감추어졌을 뿐이지 결코 소멸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소멸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표면적 금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성은 어떤 형태로든 실현되게 마련이며, 그것은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은밀하게 실현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은밀한 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금기의 위반이라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더욱이 그 주체가 인간의 모든 욕망을 버릴 것을 가르치는 불교의 승려라는 데서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흔히 파계승마당이라고 불리는 이 장면은 불교 및 승려의 타락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성에 대한 억압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극적인 해석일 것이다.

성의 드러냄은 소불알을 놓고 벌어지는 양반과 선비의 싸움에서도 잘 나타난다. 양반과 선비는 기생인 부네와 흥겹게 춤을 추다가 서로 부네를 독점하려고 한다. 이 때 등장한 백정이 양반과 선비에게 소불알을 사라고 하자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양기에 좋다는 말 한마디에 그 둘은 서로 자기 불알이라고 주장하면서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그것을 보고 백정은 "내 불알 터진다"고 비꼬는데, 겉으로는 도덕군자인 양하는 양반과 선비지만, 그 이면에는 바로 성의 욕망이 흐르고 있음을, 아니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 남녀질서의 전도

금기의 위반은 할미마당에서 남녀간 위치의 전도로 나타난다. 할미마당 역시 채록본에 따라 구체적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청어를 둘러싼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 마당은 할미가 베를 짜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노래에서는 한평생 고단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여성의 통한이 흠씬 묻어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단지 신세 한탄이나 혼자만의 넋두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유한상의 채록본에 의하면 영감이 어제 사 온 청어를 벌써 다 먹었느냐고 묻자 할미는 "어제 저녁에 내가 아홉 마리 당신 한 마리, 오늘 아침에 내가 아홉 마리 당신 한 마리씩 다 먹었다"고 대답한다. 귀한 음식을 여자가 남자보다 많이 먹었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순종과 희생을 미덕으로 가르쳤던 주자학적 질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 아니다. 남자의 덕을 하늘에, 여자의 덕을 땅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유교의 남녀관을 일방적 상하 수직질서라고 매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조 사회가 남성 우위의 사회였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할미마당이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남녀 지위의 전도이자 주자학적 여성관의 파괴이다.

이와 같이 하회탈춤 속에는 금기의 위반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 금기의 위반이라는 것은 곧 주자학적 지배질서의 파괴이다. 양반의 지체와 선비의 학식에 대한 조롱, 특권층의 허구적 윤리성에 대한 폭로, 그리고 남녀 질서의 전도가 그것이다. 탈춤패들이 서낭대를 앞세우고 집돌이를 할 때는 양진당이나 충효당과 같은 대갓집을 빼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춤의 내용은 양반을 조롱하거나 양반들의 정신세계를 거스르는 것이 주조를 이룬다. 더군다나 양반과 선비광대는 대갓집 사랑에 올라앉아 주인과 맞담배를 피우고 막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별신굿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에서만큼은 양반과 천민의 구분이 사라진다. 그 구분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양반에게는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질서 위반의 극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하회탈춤 속에 그 시대의 지배질서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비판의식이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비판이라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판이 양반사회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하회탈춤 속에 반영되어 있는 민중의식은 사회변혁 의지로까지 승화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그 비판의식은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변혁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 도움받은 자료
○ <하회탈과 하회탈춤의 미학>, 안동문화연구소, 사계절, 1999
○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