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 별신 가면무극

 류한상 채록, 국어국문학회 발간 <국어국문학> 제20호 192-193쪽, 1959

민속극 탈놀이의 내용은 상황과 시대에 따라서 연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상례라 하겠다. 그러므로 하회별신굿탈놀이 대사도 완성된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여기에서는 하회별신굿을 최초로 채록한 류한상 씨의 대본을 소개하고자 한다.

○ 제1장 : 강신(신내림)

음력 정월 초순에 산주(성황당의 마을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와 광대(별신굿놀이의 연희자)들이 성황당에 모여 4-5장(丈) 되는 대에 '5색포(五色布 ; 5색의 헝겊)를 늘이고 꼭대기에 신령(神鈴 ; 신이 내리는 방울)을 단 성황대와 2-3장 길이의 대에 '5색포'를 늘인 성주대를 세워 놓고 별신행사를 하도록 강신(降神)하여 달라고 기도를 올린다. 강신하게 되면 신령이 스스로 울리게 된다. 그러면 산주와 광대들은 주악(奏樂)을 하면서 성황대와 성주대를 모시고 국신당(國神堂).삼신당(三神堂)을 다녀서 동리 안으로 들어와서 별신 행사를 거행할 장소에 성황대를 세워 신령이 울림으로써 극이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성황대에 옷을 걸면 복을 받는다는 미신에서 서로 다투어 옷을 건다.

○ 제2장 : 주지(사자놀음)

주지라는 호랑이를 잡아먹는 무서운 귀신이 별신 행사를 무사히 진행하기 위하여 '제악귀제수'(際惡鬼際獸 ; 악귀와 짐승을 물리침)한다는 뜻에서 붉은 보자기로 전신을 가리고, 주지머리를 손에 든 광대 2인이 나와서 주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사방으로 휘두르며 돌아다닌다. 춤을 출 때 주지 입에서 '딱딱' 소리를 낸다.

○ 제3장 : 삼석놀음

'삼석놀음'은 광대들이 주연하는 것이 아니고 무녀가 토끼같이 귀가 난 가면을 만들어 쓰고 나와서 여러 가지 형태의 춤을 추었다는데, 별신에 참가했던 무녀로 생존한 이가 한 사람도 없으므로, 상세한 것은 알 도리가 없다.

○ 제4장 : 파계승

주악의 박자에 맞추어 각시가 춤을 추면서 등장하여 춤을 계속한다. 중이 등장하여 각시춤 추는 광경을 바라보고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각시가 소변보는 형용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춤을 계속한다... 중이 (각시가) 소변을 본 자리의 흙을 움켜쥐고 냄새를 맡으며 성에 대한 쾌감을 느끼는 듯한 형용의 기괴한 웃음을 짓는다... 각시, 비로소 중이 온 것을 깨닫고 놀란 표정을 한다... 각시와 중은 춤으로써 어울려서 선회한다.
초랭이, 등장하여 이 광경을 보고 방정맞게 콩콩 뛰며 놀란 형용을 한다... 마침내 중은 각시를 업고 달아난다... 초랭이, 뒤를 돌아보며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양반, 거만한 걸음으로 등장하면 초랭이가 양반의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소곤 지껄인다. 양반은 심히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혀를 찬다... 선비, 이매를 대동하고 등장하며 중이 달아난 쪽을 바라보며 경멸하는 표정을 한다.

양   반 : "어허 망측한 세상이로다."
선   비 : "에잇, 고약한지고."

초랭이, 이매, 서로 껴안고 좋아한다... 양반, 그 광경을 보고 부채로 때린다.

○ 제5장 : 양반.선비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네 사람이 그대로 있는데, 부네, 춤을 추면서 등장하여, 양반과 선비를 번갈아 보면서 홀리는 듯한 요사스러운 춤을 춘다... 선비와 양반은 이성에 대한 욕망과 지위적 체면과의 이율적인 감정의 갈등을 못 이기는 표정을 하다가 둘이 다 몸짓과 춤으로써 여자에 대한 상호간의 질투심을 나타낸다.

양   반 : (화를 왈칵 내면서 선비를 향하여) "자네가 감히 내 앞에서 이럴 수가 있는가?"
선   비 : "그대가 진정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가?"
양   반 : "아니, 그렇다면 지체가 나만 하단 말인가?"
선   비 : "그러면 자네 지체가 나보다 낫단 말인가?" 

초랭이, 이매, 자기 상전의 세도 자랑을 몸짓으로 따라한다.

양   반 : "암, 낫고말고."
선   비 : "뭣이 나아? 말해 봐?"
양   반 : "나는 사대부(士大夫)의 자손인데..."
선   비 : "뭣이? 사대부? 나는 팔대부(八大夫)의 자손일세."
양   반 : "팔대부는 또 뭐냐?"
선   비 : "팔대부는 사대부의 갑절이지."
양   반 : "우리 할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이거던."
선   비 : "아! 문하시중? 그까짓 것. 우리 아버지는 문상시대(門上侍大)인데."
양   반 : "문상시대? 그것은 또 뭔가?"
선   비 : "문하보다는 문상이 높고, 시중보다는 시대가 더 크다."
양   반 : "그것 참 별꼴 다 보겠네."
선   비 : "지체만 높으면 제일인가?"
양   반 : "그러면 또 뭣이 있단 말인가?"
선   비 : "첫째, 학식이 있어야지, 나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읽었네."
양   반 : "뭣이? 사서삼경? 나는 팔서육경(八書六經)을 다 읽었네."
선   비 : "도대체 팔서육경이 어데 있으며, 대관절 육경은 또 뭐야?"
초랭이 : "나도 아는 육경, 그것도 몰라요? 팔만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 안경, 약방의 길경, 처녀 월경,
            머슴 쇄경"
이   매 : "그것 맞다, 맞어."
양   반 : "이것들도 아는 육경을 소위 선비라는 자가 몰라?"
선   비 : (혀를 차면서) "우리 피장파장이니, 그러지 말고 부네나 불러 봅시다."
양   반 : "부네야!"
선   비 : "우-욱-." 註. 우-욱- 하는 것이 부네의 대답인데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부네, 춤추며 나온다... 양반과 선비는 부네와 흥겹게 춤추다가 서로 부네를 독점하려고 노력한다... 백정, 도끼와 소불알을 들고 등장한다.

백   정 : "샌님! 알 사이소!"
양   반 : "이놈, 한참 신나게 노는데 알은 무슨 알인고?"
백   정 : "알도 모르니껴?"
초랭이 : "닭알, 눈알, 새알, 대감 통불알."
백   정 : "맞았소, 맞어. 불알!"
선   비 : "이놈, 불알이라니?"
백   정 : "소불알도 모르니껴?"
양   반 : "이놈! 쌍스럽게 소불알은 어짠 소리야? 안 살 테니 썩 물러가거라!"
백   정 : "소불알을 먹으면 양기에 억시기 좋습니더, 좋아."
선   비 : "뭣이? 양기에 좋다! 그럼 내가 사지."
양   반 : "아니, 야가 나에게 먼저 사라고 했으니, 이것은 내 불알이야."
선   비 : "아니, 이것은 결코 내 불알이야." 

양반과 선비는 서로 소불알을 잡고 당긴다.

백   정 : "아이고! 내 불알 터지니더."
할   미 : (싸움을 말리면서 소불알을 쥐고서) "소불알 하나를 가지고 양반은 제 불알이라(하)고, 선비도 제
            불알이라 카고, 백정도 제 불알이라 하니, 이 불알을(은) 도대체 뉘 불알이로(인고)? 육십 평생을
            살아도 소불알 가지고 싸우는 것은 첨 봤그만, 첨 봤어."

○ 제6장 : 살림살이

베틀에 할미가 앉아 베를 짜면서 노래한다.(가사 내용은 일평생 살림살이의 고달픔을 노래한 것)
註. 이 베틀놀이 장면은 18년 전과 30년 전에도 하지 않았으나 70년 전에는 있었다고 한다.

떡다리 : "할미는 일평생을 베를 짜도 새 옷 한 번 못 입고 성황대에 옷 한 번 걸어 보지 못하면서?"
할   미 : "팔자가 그런 걸 도리 있나?"
떡다리 : "성황대에 옷을 걸어 봐요. 복이 저절로 들어올 겐데."
할   미 : "그럴 팔자가 안 되는걸? 떡다리, (쓸데없는?) 소리 몹시 하네."
떡다리 : "내가 어제 장에서 사 온 청어는 벌써 다 먹었노?"
할   미 : "어제 저녁에 내가 아홉 마리 당신이 한 마리, 오늘 아침에 내가 아홉 마리 당신 한 마리씩, 두 두
            름 다 먹었소."
떡다리 : "어허! 저렇게 먹으니 이가 다 빠지지."

떡다리, 노래 부른다.(가사 내용은 마을 풍경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 제7장 : 살생

백정이 춤을 추면서 도끼로 소를 잡고 껍질을 벗기는 형용을 하고, 관중들에게 소의 염통과 불알 등을 사라고 한다.
註. 백정가면 명칭을 희광이라고도 부르던 옛날에는 소를 잡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사형하는 형용을 하면서 하늘에서 낙뢰(落雷)함을 두려워하는 표정을 하였다고 한다.

○ 제8장 : 환재(환곡)

전원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데 별채가 나와서 환재(還財) 바치라고 외치면 전원이 당황한 표정을 하는데, 별채는 온갖 횡폭한 행동을 함부로 한다.
註. 환재 제도는 국가에서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곡물을 대여하였다가 추수 후에 수납하는 것인데, 국가의 의도와는 어긋나게 관리들이 중간착취를 하여 백성을 무한히 괴롭게 하였던 것을 풍자한 것이다.

○ 제 9장 : 혼례

총각과 각시가 혼례식을 치른다.
註. 이때 혼례식용 자리를 가져가면 복을 받는다고 하여 다투어 자리를 사서 바친다.

○ 제10장 : 신방

총각과 각시의 혼례 초야에 각시가 총각이 잠든 후 궤(櫃)를 열면 각시의 간부(姦夫)인 중이 나와서 총각을 살해한다.

○ 제11장 : 헛천굿(거리굿)

헛천굿은 일명 거리굿이라고도 하는데 별신행사의 최종일 음력 정월 15일 마을 앞 길거리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모든 귀신들이 하회동리(河回洞里)에는 침범하지 못하게 굿을 올리는 것이다. 광대들은 주악과 함께 춤을 춘다.

○ 제12장 : 당제

별신놀이 최종일 야삼경(夜三更)에 성황당에 올라가서 성황대를 봉납하고 일년간의 동리의 무사식재(無事息災)를 기도하고, 다음에 국신당.삼신당에 순차로 제(祭)를 올리면 별신행사가 종료되므로 광대들은 제모격(制帽格)인 꽃벙거지를 모두 벗어 삼신당에 걸어두고 약 15일간 가지 못하던 자기 집으로 헤어지게 된다.

하회 별신 가면무극 대사 후기

① 이 하회 별신 가면무극 대사는 하회 현지에서 생존자들에 의하여, 70년 전, 31년 전, 18년 전 3회의 행사를 조사하여 종합 채록한 것이다.

② 세칭 하회별신굿이라고 하는 것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에서 옛날에 행하던 원시종교의 제전행사인데, 매년 1차 음 정월 초순에 동후(洞後) 고부상(高阜上)에 있는 성황당.국신당.삼신당 등에 순차로 제례를 집행할 때 의례적인 탈놀이(假面劇)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차종(此種)의 제전은 멀리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보인 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濊)의 무천 등이 그것이니, 부여에서는 12월, 고구려에서는 10월에 각각 제천국중대회(祭天國中大會)를 하여 연일 음주가무하였고, 한(韓)에서는 5월에 하종(下種)을 마치고 한 번 10월에 농절(農切)을 마치고 한 번 연 2차 집행하였던 것이다. 주사신(主祀神)은 다 천신(天神)으로 되어 있으나, 고구려에서는 대옥(大屋)을 세워 귀신을 제사하고 또 영성사직(零星社稷)을 제(祭)한다 하였으며, 또 동국(東國)의 수혈(隧穴)에서 수신(隧神)을 맞이하여 목수(木隧)를 신좌(神座)에 두고 제사하였다. 그 외에도 부여신(扶餘神).등고신(登高神)이라는 류화(柳花).주몽(朱蒙) 모자(母子) 또는 말하기를 기자(箕子).가한등신(可汗等神)을 제(祭)함도 제기록(諸記錄)에 산견(散見)하며, 한(韓)에서는 "국읍(國邑)에 각인(各人)을 세워 천신(天神)에 주제(主祭)하여 천군(天君)이라 이름하고 또 제국(諸國)에 각각 별읍(別邑)을 두어 소도(蘇塗)라 이름하고 대목(大木)을 세워 영고(鈴鼓)를 달아서 귀신을 섬긴다" 하였으니, 대개 천신(天神)을 주신(主神)으로 하고 제자연현상(諸自然現像)을 신(神)으로 제(祭)하였던 것이다.

이제 하회별신제의 사신(祀神)은 각각 국신당은 천신(天神), 삼신당은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의 삼신(三神), 성황당은 토지수호신(土地守護神)일 것이다. 타처(他處)에서는 국신당, 곧 삼신당 1개소뿐인데, 이것들이 따로 있음은 연구를 요한다. 신역(神域)을 부락 외에 따로 둠도 별읍(別邑)이란 말에 일치되고, 또 굿을 할 때 '성황대'라는 4.5장(丈)의 대목(大木)을 세워 가장 신성시한 신령(神鈴)을 전해옴도 '입대목현령고사귀신'(立大木懸鈴鼓事鬼神)이란 말과 일치된다. 신에 바친 악무(樂舞)로서는 <동이전>에 '기무 수십인 답지저앙 수족상응 절주유사탁무(其舞 數十人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라 하였음이 바로 남도의 칭칭놀이로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뒤에 신라 진흥왕 2년(AD 551) 고구려의 혜량법사(惠亮法師)가 와서 팔관회(八關會)의 법을 시작하였으니 관(關)은 금폐(禁閉)를 의미함이라 팔관(八關)은 불살생(不殺生).불투도(不偸盜).불사음(不邪淫).불망어(不妄語).불음주(不飮酒).불좌고광대상(不坐高廣大床).불착화?영락(不着華?瓔珞).不習歌舞妓樂(불습가무기악)이다. 이 팔죄(八罪)를 방지할 목적으로 가면극을 한 것이 제전행사의 탈놀이의 시작인 듯하다. 이것은 확실히 종래의 민족신앙에 불교의 계명을 합체시켜 놀음 자체가 민중교화를 조화시켜 종교의 홍도(弘道)를 도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역시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연등이사백불, 팔관이사천영산삼용신(燃燈以事百佛, 八關以事天靈山三龍神)'이라 하여, 국가적 대제전으로서 연등(燃燈)은 정월 15일이었다가 뒤에 2월 15일로 하고, 팔관(八關)을 11월이나 서경에서는 10월로 하였다.
이조에 와서 유교존숭의 결과, 연등.팔관은 다 거의 폐하였으나, 연등은 4월 8일 불교에서만 하고, 팔관은 연말구나행사(年末驅儺行使)로 궁중에서 거행하였으며, 지방에서 하는 별신굿은 대개 정월 15일에 행하였다. 별신은 유교 관념에서 잡신을 의미함인지? 혹은 지방이니까 본신(本神)이라 부르지 못함인지 알 수 없다.

③ 하회별신가면무의 특이한 점은 탈을 다른 곳에서는 그때마다 만들어 쓰고, 쓰고 나서는 곧 소각하는데 하회의 가면은 세세상전(世世相傳)함이다. 현재의 것은 이조에 들어서 만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며, 그 조각의 솜씨 차림도 고려 이전으로 생각된다. 탈 12개 중 3개를 잃어버리고 현재 9개가 남아 있으며 흥행방법도 상전(詳傳)못하나, 살생의 계로(戒로 ; 백정), 망어(妄語)의 계로(戒로 ; 초랭이), 불좌고광대상(不坐高廣大床) 즉 오만(傲慢)의 계로(戒로 ; 양반) 각 인물이 등장하여, 사회의 불미로운 이면상(裏面相)을 소재로 하여 관중들로 하여금 반성을 촉구하는 풍세(諷世)적인 것이며 연기의 내용도 신축성이 있었는 듯하다.

④ 가면 제작자에 대한 전설이 있다. 고려 중엽 이전까지 하회동에 허씨들이 세거(世居)하였는데(고려말엽까지 안씨, 이조 초부터 류씨가 세거하여 왔다.) 허 도령이 있었다.
허 도령(이름 미상)은 꿈에 신에게서 가면 제작의 명을 받아 작업장에 외인(外人)이 들어오지 못하게 금삭(禁索)을 치고 매일 목욕재계하여 전심전력을 경주하여 가면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 도령을 몹시 사모하는 처녀가 있었다. 처녀는 연연한 심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하루는 허 도령을 얼굴이나마 보려고 휘장에 구멍을 뚫고 애인을 엿보았다. 금단(禁斷)의 일을 저지른 것이다. 입신지경(入神地境)이던 허 도령은 그 자리에서 토혈을 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므로 열 두 번째의 '이매'탈은 미완성인 채 턱없는 탈이 되고 말았다. 그 후 마을에서는 허 도령의 영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황당 근처에 단을 지어 매년 제를 올린다.

⑤ 주민들은 별신 행사시 외에는 가면을 못 보게 되어 있으며, 부득이 보아야 할 경우에는 신에게 고하고 난 후이라야 한다. 가면을 함부로 다루면 탈(變怪)난다고 주민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별신행사 때에도 광대들은 별신제의 15일간은 한 장소에 합숙하며 각자의 집에 못 가는 것은 물론 가족과 회견도 엄금하고 있으며, 특히 여자를 가까이 하면 변괴가 일어난다는 데에서 엄수하고 있다. 우연한 부합인지는 모르지만, 별신행사시 돌연히 말을 못하는 자, 신열로 인하여 위독케 되었던 자가 백약의 효(效)를 못 보다가도 별신행사시 기도하여 잊어 버린 듯이 완쾌하는 비과학적인 사실을 필자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⑥ 탈의 의상 기타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명칭

개수

구조

비고

신령(神鈴)

1

 

 성황대, 성주대, 오색포

주지

2

 입을 움직여서
 딱딱 소리를 냄

 붉은보로 전신을 가린다.

각시

1

 턱이 부동(不動)

 처녀의 옷차림

1

 턱이 움직임

 지팽이를 들고 고깔 가사를 착용

초랭이

1

 턱이 부동(不動)

 바지 저고리 위에 붉은 쾌자를 입고 두 어깨와
 허리에 걸쳐 청홍색 띠를 띰

양반

1

 턱이 움직임

 부채를 들고 도포와 정자관(丁字冠) 착용

선비

1

 턱이 움직임

 담뱃대를 들고 도포, 갓을 착용

이매

1

 턱이 움직임

 평민계급의 남자복색, 벙거지 착용

부네

1

 턱이 부동(不動)

 젊은 부인 복색

백정

1

 턱이 움직임

 천인계급 복색에 3색 띠를 하고 도끼와 칼을
 가짐

할미

1

 턱이 부동(不動)

 평민계급의 노파복색, 쪽박을 가짐

떡다리

1

 

 현재 소실되었음

별채

1

 

 현재 소실되었음

총각

1

 

 현재 소실되었음

    꽃 벙거지, 기사 의상, 소도구

이상이 현존하는 가면이고, 총각.별채.떡다리 3개는 분실하였는데, 대구시에 있는 이경성 씨 증언에 의하면, 해방 전에 거주하던 일본인 한학자 河野長三郞이란 자가 말하기를 八波羨吉이가 가면을 일본으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하회동에서는 옛날에 별신굿을 할 때 인근에 있는 병산동(屛山洞)에서 가지고 갔다는 소문이 있기에 필자가 경찰에 의뢰하여 병산동에 있는 가면을 찾아보았으나 그것은 하회가면을 모방해서 만든 것에 불과했다. 혹자는 말하기를 일본인이 가져갔다고 하나 그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설령 일본인이 가져갔다 하더라도 일본인이 직접 가져간 것이 아니고 간접으로 입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면의 명칭이 시대에 따라 변하였는데, 현재 백정 가면이 옛날에는 '희광이'였다는 것을 근간에 발견하였으니, 양반.선비의 가면 등도 구명(舊名)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극 내용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였을 것이다.

이 가면의 명칭이 이 지방 각 처에서 속담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초랭이 쉬염 같다', '초랭이 떨음한다', '떡다리 같다', '주지놀음하듯 한다' 등이 있다. 이걸 보아 별신가면행사가 옛날에는 하회동 뿐이 아니고 각지에 있었으며 민중생활에 미치는 정신적인 영향도 컸으리라고 추측된다.

⑦ 하회 별신가면무극의 내용은 양주산대가면극이나 봉산가면극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양주.봉산가면극은 오락적 흥행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으나, 이 가면극은 원시민족 종교의 제전행사로서 극의 각본이 일정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과장은 일종의 식순처럼 정하여져 있으나, 대사는 신의 계시에 의하여 광대들이 신을 대신하여 그 시대의 불미로운 사회 이면상을 소재로 하여 연기를 하여 관중들로 하여금 각성시키며 반성을 촉구하는 민중교화의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광대의 무용은 고전무용의 테두리 안에서 즉흥적인 춤이었으며, 대사도 과장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즉흥적으로 말하였다. 다른 하나의 특색은 놀이 도중에 수시로 어떠한 계급의 사람이든지 마음대로 광대는 훈계하고 희롱을 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가면극에는 과장이란 말이 쓰이지 않고 있으나 설명의 편의상 과장으로 나누어 별신행사의 전문을 양기(略記)하였다.
끝으로 하나 안동군 풍산면 수동(壽洞) 인근 5개 동리에서는 해마다 '진법(陳法)별신놀이'라는 것을 행하여 왔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따로 발표의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 도움받은 자료
○ <하회탈과 하회탈춤의 미학>, 안동문화연구소, 사계절, 1999
○ <마당굿 연희본(2) 무형문화재 지정종목>, 심우성, 깊은샘, 1988
○ <탈놀이의 기원과 구조>, 박진태, 새문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