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별신굿탈놀이 이두현 채록본

* 구술 : 이창희  /  채록 : 이두현(1980. 2. 8.)

○ 대내림(강신降神)

섣달 그믐날 산주는 내림대를 들고, 대메는 광대 2명이 서낭대[서낭대에는 오색포(五色布)를 늘어뜨리기도 하였다.]를 메고, 그 뒤로 모든 광대가 뒤따르며 마을 뒷산(화산花山)에 자리잡은 초가로 된 서낭당으로 올라간다. 산주와 광대들은 두루마기에 갓을 썼으나 각시광대만은 갓도 없고, 소년의 평복으로 무동을 탄다. 이 때 광대들은 악기를 들고 농악을 울리며 올라간다. 상당(上堂)인 서낭당에 오르면 서낭대를 당 앞쪽 처마에 기대어 세우고, 당방울(신령神鈴)이 달린 내림대를 산주가 양손으로 받쳐들고, 당 안으로 들어가 기대어 세우고 대내림, 즉 강신(降神)을 빈다. 이 때 광대들은 큰 광대, 각시광대, 선비광대 순으로 일렬로 당 앞에 늘어선다.

산주는 재배합장(再拜合掌)하고 서낭님께 대내림을 빈다.  "해동(海東) 조선 경상북도 안동 하회 무진생 서낭님, 앉아 천 리, 서서 만 리 보시는 서낭님이 뭐를 모릅니까...... 내리소서 내리소서 설설이 내리소서......" 라고 하며, 마을을 위해 굿을 할 터이니 도와달라는 내용을 말로 빌며 산주가 내림대를 잡고 정성을 들이노라면 이윽고 대가 흔들리고 당방울이 울린다. 산주는 재배하고 당에서 물러나와 다시 재배하는데 광대 전원도 이 때 함께 재배한다. 산주는 당방울을 내림대에서 서낭대 꼭대기에 옮겨달고 앞장서서 하산을 서두른다.

대메는 광대가 서낭대를 메고 앞서면 산주가 뒤따르고 그 뒤로 각시광대가 무동을 타고 따른다. 그 다음은 양반광대와 선비광대 그리고 연령순으로 모든 광대가 따르고 함께 올라왔던 부정(不淨)이 없는 마을 노인들 3-4명도 함께 하산한다. 이 때 광대들은 김매구(길군악)을 치고, 각시광대는 긴 명주 수건을 휘날리며 손춤을 춘다. 일행이 동사 앞에 다다르면 이 때가 오후 3시경이 되는데 서낭대를 동사처마에 기대어 세우고, 산주는 그 동안 봉납(奉納)된 옷가지와 천(포布)들을 서낭대에 매단다. (마을 사람들은 서낭대에 옷을 걸면 복을 받는다고 하여 다투어 옷을 바친다.) 이 때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면 동사 앞마당에서 농악을 울리며 한바탕 논다. 무진년 별신굿 때에는 이 강신마당에는 무당들의 참가는 없었으며, 하루의 행사가 끝나면 서낭대는 동사마루  안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모시고 합숙하였다.

정월 초이틀부터 탈놀이는 동사 앞마당에서 구경꾼들이 모이면 놀고, 또 대가집에서 초청받으면 그 집에 가서 놀았다. 큰 집에 들어가면 무당은 성주풀이를 하고, 광대들은 마당에서 탈놀이를 하였다. 그 집 처마에 기대어 세운 서낭대 밑에 산주가 앉고, 하루종일 여섯 마당을 놀면 쌀이 몇 말, 나락이 몇 말씩 나왔다. 이 곡식은 별신굿하는 경비로 쓴다. 작은 집에서는 광대들의 마당놀이를 할 수 없어 성주 앞에 올라가 농악을 치고 성주지신만 눌러 주고 받쳐놓은 쌀을 갖고 물러나왔다.

○ 제1과장 무동(舞童)마당

탈놀이를 시작하려면 먼저 청광대가 마련한 섬(오장치)에서 각자의 탈을 받아 쓰고, 탈놀이를 준비하고, 자기 차례가 되지 않은 광대들은 농악을 울린다. 각시광대는 탈을 쓰고, 노랑 저고리와 푸른 치마의 처녀복색을 하고 무동을 탄다. 꽹과리를 들고 구경꾼 앞을 돌면서 걸립을 한다. 돈을 받을 때에는 무동받이가 약간 무릎을 굽혀 손이 닿게 한다. 걸립(乞粒)에 응하지 않는 사람 앞에 가서는 꽹과리를 두드려 재촉한다. 이렇게 모은 전곡(錢穀)은 모두 별신굿 행사에 쓰고, 남으면 다음 행사를 위해 세워두었다고 한다. 각시광대는 때때로 내려서 구경꾼 앞을 돌면서 걸립 하였는데 이 걸립은 탈놀이 전마당을 마칠 때까지 수시로 행해졌다. 각시광대는 무동을 타지 않을 때는 업혀 다녔다고 한다.

○ 제2과장 주지 마당

주지는 곧 사자를 뜻하며 주지놀이는 개장( 開場)의 액(厄)풀이 마당이다. 놀이마당의 잡귀를 쫓는 의식무에 해당된다. 누런 상포(喪布) 같은 푸대를 머리부터 쓰고, 두 손으로 꿩털이 꽂힌 주지탈을 든 한 쌍의 암수 주지가 나와 한 바퀴 돌고 마주보고 춤을 춘다. 깡충깡충 뛰면서 싸우는 시늉도 하고 서로 입을 물고 맞붙고 넘어지기도 한다. 이 때 가면의 입을 개폐(開閉)시켜, 딱! 딱!, 소리를 낸다. 이윽고 초랭이가 나와 "후이, 후이" 하고 넘어진 주지를 일으킨다. 한참 놀다가 나중에는 둘 다 쫓고,  한바탕 춤을 추고 퇴장한다. 이 주지춤은 호랑이를 잡아먹는 귀신으로 몸은 용, 머리는 호랑이 모양을 한 귀신의 춤이라 하기도 하고, 암.수 주지춤이라 하기도 하고, 꿩싸움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가집에 초청되어가서 놀 때에는 주지가 알곡 가마니나 솥뚜껑이나 옷 등을 물어 당기면, 서낭님이 요구하는 것이라고 믿고 곧 내어주었다고 한다.

○ 제3과장 백정(白丁)

백정이 도끼와 칼을 넣은 망태를 메고 나와 한바탕 춤을 춘다. 이 때 멍석을 사람이 써서 만든 소가 나온다. 백정이 "워, 워." 하고 소 주위를 돌다가 소에 덤벼들다 소가 떠받아 나가 떨어진다. 백정이 도끼를 꺼내 땅을 두세 번 내리치면 소가 쓰러진다. 소를 잡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소가 쓰러지면 백정은 이어 칼을 꺼내어 우랑(牛囊)을 끊어 들고, 구경꾼들을 향해 "우랑 사소." 한다. 아무도 산다는 사람이 없자 더욱 큰 소리로 "소 부랄 사소." 하고 외친다. 염통이나 쓸개를 사라고 즉흥적인 재담을 하기도 한다. 구경꾼들은 돈을 건네주고 우랑을 받는 척한다. 이것도 걸립의 하나로 모은 전곡은 별신굿 행사에 쓴다. 백정가면을 전에는 '희광'이라고 불렀으며, 소를 잡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사형하는 시늉을 하고 이어서 낙뢰(落雷)를 두려워하는 표정을 하였다고도 한다. 지금도 천둥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퇴장하는 시늉을 한다.

○ 제4과장 할미마당
   
쪽박을 허리에 차고 흰 수건을 머리에 쓰고 허리를 들어낸 할미광대가 등장하여 살림을 산다. 베틀에 앉아 베를 짜면서 한평생 고달프게 살아온 신세타령을 [베틀가]에 얹어서 부른다. 실제 베틀은 없이 북만 쥐고 베짜는 시늉을 한다. [베틀가]의 일부를 적으면 아래와 같다.

                                                     베틀다리 양네다리
                                                     앞다리 높게 놓고
                                                     뒷다리는 낮게 놓고
                                                     앉일개는 뒤에 놓고
                                                     용두머리 삼 형제요
                                                     눈섭대는 두 형제요
                                                     잉앳대는 삼 형제요......

할미는 넋두리같이 베틀가를 외우다가 말고 한숨을 쉬고 허공을 바라보고는 혼잣말로 "영감 어제 장 가서 사다준 청어는, 어제 저녁에 영감 한 마리 꾸어주고, 내 아홉 마리 먹고, 오늘 아침에 영감 한 마리 꾸어주고 내 아홉마리 다 먹었잖나." 하고, 천천히 일어나서 춤을 추다가 구경꾼들 앞으로 다가가서 쪽박을 들고 걸립한다.

○ 제5과장 파계승(破戒僧) 마당

부네가 장단에 맞춰 오금춤을 추면서 등장한다. 이어 오줌 눌 자리를 찿다가 사방을 둘러 본 다음 엉거주춤 앉아서 치마를 약간 들고 오줌을 눈다. 이 때 중이 나타나 이 광경을 엿보고 염주를 만지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며 합장한다. 이어서 부네가 오줌 눈 자리에 가서 흙을 긁어 모아 양손으로 코 가까이에 갖다대고 냄새를 맡으며 "허허허" 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웃는다. 중은 손을 털고 부네에게로 다가가서 날렵하게 부네를 옆구리에 차고 도망간다. 이 놀이마당은 서로 대사가 전혀 없이 진행된다.

○ 제6과장 양반, 선비 마당

양반이 부채를 부치며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거만한 팔자걸음으로 나오면, 하인인 초랭이가 뒤따르며 까불거린다. 이따금씩 양반의 뒤통수를 치는 시늉을 한다. 선비가 유건(儒巾)을 쓰고 낭선(郎扇)으로 앞을 가리며 같은 방향으로 등장하면 부네와 하인인 이매가 뒤따른다. 양반과 선비는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서로 초랭이가 두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하다가 양반에게 말한다.

초랭이 : 샌님요. 나온 김에 서로 인사나 하소.
양   반 : (샌님을 바라보고) 우리 서로 통성명이나 하시더.
선   비 : (양반을 돌아보고 고개를 끄떡하며) 예, 그러시더. (양반과 선비가 그 자리에 앉아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데 초랭이가 사이에 끼여들어 양반 머리 앞에 엉덩이를 대고 선비에게 절을 하면서
            양반의 인사를 대신하여)
초랭이 : 니 왔니껴. (양반이 성이 나서 고개를 들고 부채로 초랭이의 엉덩이를 때린다.)
양   반 : 엑끼 이놈!
선   비 : 아니 저놈 초랭이가 버릇이 없네요.
양   반 : 암만 갈쳐도 안되는 걸.
선   비 : 주제에 양반이라카나. 그래 놓고 이마에 댓쪽을 쓰고 우에 댕기노.
양   반 : 그럼 내가 양반이 아니고 뭐꼬. 날보다 더한 양반이 있나?
초랭이 : (물러가 까불거리던 초랭이가 양반과 선비의 대화를 기웃거리듯 번갈아 보다가) 지도 인사, 나도
            인사, 인사하기 마찬가진데 무슨 상관있나.
선   비 : (이 때 선비는 고개를 끄덕하다가) 야 야 부네야. (부네를 부른다.)
부   네 : (살금살금 걸어가서 선비의 귀에다 대고) 우욱! (대답으로 소리를 지른다.)
선   비 : 아이쿠, 깜짝 놀래라. 온야 부네라. (귀여운 듯이 바라보며 어깨를 주므르라는 시늉을 하면 부네
            는 선비의 어깨와 팔을 주무르고 이따금씩 머리의 이도 잡는 시늉을 한다.)
초랭이 : (이 때 초랭이도 양반에게 다가가서) 샌님요, 어깨 주무리주까요.
양   반 : (양반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초랭이 : (초랭이는 양반의 어깨를 주무른 듯하다가 우악스럽게 무릎으로 어깨를 짓누르며 골려준다.)

양반과 선비는 부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문자를 써가며 지체와 학식에 대한 문답으로 다투다가 결국 양반이나 선비나 서로 망신을 당한다. 그러다가 양반과 선비가 서로 화해를 하고 부네와 초랭이까지 한데 어울려 신이 나게 춤을 추며 논다. 이 때 이매가 나와 외친다.

별채 : (이매는 별채대역이다.) 환재 바치시오. 환재 바치시오!
(모두 깜짝 놀라 벌벌 떨고 허겁지겁 도망간다.)

○ 당제(堂祭)

섣달 그믐날부터 동사에서 서낭대를 모시고 합숙한 일행은 15일 아침밥을 먹고 나서 서낭대를 모시고 서낭당에 올라가 당제를 지낸다. 이 때 제수(祭需)로는 백설기 서너 말, 까지 않은 삼실과(대추, 꽂감, 밤)와 제주가 놓이고, 참기름에 종이 심지를 박아 불을 켠다. 별신굿을 준비할 때부터 동내에서 육식(肉食)을 금하게 하는 것을 아울러 생각할 때 서낭당 제수는 소산(素山)의 그것임을 알 수 있다. 산주와 유사 외에 부정이 없는 동네어른들이 제사에 참여한다. 제사는 산주가 주제하는데 축문(祝文)은 없고 비념으로만 축원을 올리고 종일 소지(燒紙)를 올려 계속되었다. 소지는 복을 빌어 산주 혼자서 올리는데 먼저 서낭님소지, 광대소지(15명분) 다음에 동내 문장소지(門長燒紙)를 비롯하여 각호주소지, 심지어 우마(牛馬)소지까지 올린다. 광대들은 탈을 쓰지 않고 산주와 더불어 재배한 뒤, 서낭당을 돌면서 농악을 치고 나서 탈을 쓰고, 각시는 무동을 타고 걸립을 하고, 종일 탈놀이를 하였다.

섣달 그믐날 대내림 때는 제수도 없이 빌었고, 국시당과 삼신당에도 들르지 않았다고 한다. 정월 보름 당제 때에는 유사가 국시당에 가서 간단히 제사를 지냈으나 삼신당에는 가지 않았다. 삼신당은 고목이어서 동네에서 아이의 장수를 빌어 아이를 이 나무에 팔고, 광대들이 그 근방에 가게 되면 풍물을 치고 나무둘레를 한 바퀴 도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에는 별신굿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서낭대를 들고 삼신당에 아침인사를 드리고 나서야 마을나들이(神遊)를 하였다고 한다(박학이의 증언, 1936). 당제가 진행되는 동안 구경꾼들은 멀리 서낭당을 둘러싸고, 당제와 탈놀이를 구경한다. 저녁무렵, 오후 5시쯤 되면 당제행사를 마치고, 서낭대와 내림대를 당 처마에 얹고, 광대들은 청광대에게 각기 꽃갓과 탈을 반납하고, 15일 만에 합숙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간다. 다만 유사와 광대 1명(무진년에는 청광대)과 양반광대와 각시광대만이 남는다.

○ 혼례마당

하산하면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마을 입구 밭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장구 두 개를 나란히 놓고, 그 위에 꽃갓을 하나씩 놓는다. 각시광대는 탈을 쓰고, 신부역(新婦役)으로 서면, 신랑은 청광대가 섰다. (청광대는 자식을 얻으려고 신랑역을 이 때 자원했었는데 어두워서 무슨 탈을 썼는지 이창희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으슴프레한 모닥불을 피웠고, 양반광대는 홀기(笏記)를 끝까지 다 부르는 것이 아니라 줄여서 간단하게 하는데, 각시가 절을 두 번하고, 신랑이 절 한 번하고 혼례 마당은 끝났다.

○ 신방(新房)마당

신방 마당도 같은 멍석 위에서 진행되는데 절이 끝나니 청광대가 각시광대 위에 올라탔는데 양반광대가 각시광대보고 "아야, 아야." 소리를 하라고 해서 소리를 냈더니 끝났다고 한다. 이 혼례 마당과 신방 마당은 17세 처녀인 서낭신을 위로하기 위해 치뤄지는 것이라고 한다. 풍요의례(豊饒儀禮)의 뜻도 있는 비의(秘儀)이다. 신방 마당이 끝나면 각시광대는 탈을 청광대에게 주고, 청광대도 탈을 동사에 봉납하고 귀가하였다.

○ 헛천거리굿

신방마당이 끝나면 유사의 책임 하에 마을 입구에서 무당(巫堂)들의 헛천거리굿이 행해진다. 무당 1명, 남무 3명으로 별신굿을 하는 동안 묻어 들어온 잡귀잡신(雜鬼鬼神)들을 마을에서 몰아내는 굿이다. 별신굿 때가 아니면 마을에서 풍악소리를 내지 못했던 하회 마을은 또 다시 반상(班常)의 차별이 엄격했던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 도움받은 자료
○ 한국가면극선, 교문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