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풍물굿

북한의 풍물굿은 조사.연구의 대부분이 해방 이후에 시작된 탓에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으며 제한적인 정보만 확인될 뿐이다.
북한은 1954년 9월 물질문화유물보존위원회의 <조선의 민간오락>에서 17가지 놀이를 조사.보고 한 후 계속 연구하여 70년대에는 100여가지를 조사.보고 하였다. 현재 북한의 민속놀이는 가무놀이, 경기놀이, 겨루기놀이, 아동놀이로 구분짓고 있으며, 농악놀이(북한식 풍물 명칭)는 가무놀이와 겨루기놀이에 혼합되어 속해있다. 농악놀이는 다시 농악무.농악회.농악노래가 있고, 농악무는 구정놀이 (개인놀이)와 마당놀이(진법놀이)가 있다. 상모의 경우 명칭은 조금 다르지만 남한과 같이 줄상모(채상모)·깃상모(부포 상모).12발 상모가 있으며 치복은 화려하지 않다. 북한은 남한처럼 풍물만 치며 연행하는 경우보다 줄당기기식의 겨루기놀이, 또는 탈놀이와 같은 가무놀이와 혼합되어 연행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실례로 한총련 대학생 임수경씨가 다녀온 평양학생축전의 개막행사 중 집단 겨루기 부분에서 풍물을 앞세우고 대나무 깃발을 곧추 세운 양쪽의 풍물패가 풍물을 놀았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두레풍물을 풍쟁으로, 공동건설 작업의 일환으로 걸궁, 군악의 성격인 군물과 일반적인 매구풍물굿 등으로 성격상 구분하고 있다. 이 부분은 사진 자료로 보아 알 수 있는데 논 매러 나가는 행진과 행사 때의 가두 행진풍물, 병사들의 휴식 장면에 보이는 북, 협동농장에서 추수를 끝내고 볏단을 높이 쌓아 두고는 풍물장단에 춤판을 벌리는 모습, 남한의 사물놀이 상모판굿과 같은 풍물 연주 등으로 그 형태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집단 작업이나 군중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적인 풍물의 본질적 기능인 노동과의 관련으로 노동선봉대가 있음이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다. 북한에서는 풍물을 민족문화의 계승 발전과 더불어 협동농장의 중요한 오락으로 활용되었다. 우리나라 음악 무용 중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그 풍부한 인민 성과 예술성으로 하여 근로 인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날의 풍물굿의 일부 형식과 율동들은 봉건사회 당시의 미감을 반영한 것이다. 풍물과 더불어 탈놀이는 착취자들에게 반대하여 일어선 인민들의 감정을 반영하고 봉건사회 인민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사상 감정을 반영한 인민 창작으로서 낙천적이며 패기있고 투쟁적인 기백이 흘러 넘친다.
이렇듯 북한의 사회주의 사상과 맞물리는 민중(인민)계급의 예술로 민속예술을 복원.재창조하여 현재까지 연행하고 있다. 삶과 깊게 연관되어, 놀이와 예술로 하나로 묶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조선예술> 1972년 7월호에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형식은 우리 인민이 오랜 세월을 두고 즐겨한 인민예술의 기본형식의 하나이다"라고 북한 가극 연출가가 말하듯이 예술과 놀이를 분리한 사상이 아니라 하나임을 말한다.

다음은 과거의 북한 풍물굿의 모습에 대한 자료이다.
정병호의 <농악>에 의하면 경기·충청풍물굿의 영향을 받은 황해도 지방의 연백(延白)·해주(海州)·곡산(谷山)·송미(松未)·신천(信川)·개성(開城) 풍물굿과 평안도 지방인 순천(順川)·평양(平壤)풍물굿이 있으며, 영동풍물굿의 영향을 받은 함경도의 길주(吉州)·함주(咸州)·안변(安邊)풍물굿이 있다고 한다. 이는 실질적인 현지 조사가 아닌 해방과 한국전쟁 후 남한으로 이주해온 북한인 들의 구술 조사로 이루어 졌기에 실질적인 가락과 진법들보다는 대략적인 특징들로 학자들의 분리적 논리에 맞추어진 듯 싶다. 이에 비해 권희덕은 <농악교본>에서 실질적인 여러 북한풍물굿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황해도 장연풍물굿은 소를 타고 지휘하는 '소탄관'(아전 계급)이 마을 사람들을 산과 들의 두 패로 나누어 풍물을 치면서 윷놀이 시합을 하는 풍물굿이다. 각 마을에서 출발하여 길놀이굿을 한 후 동헌마당에 모여 <농부가>를 부르고 다시 농사놀이를 한다. 농사놀이는 씨 뿌리기·모심기·김매기·참새 쫓기·물고다툼·가을걷이·마당도리깨질 등으로 여러 마을 풍물패가 번갈아 연행하는 형식을 취한다.
황해도 대동굿놀이는 황해 무악과 연결된 무속 대동굿으로 당산신을 맞아서 신앙굿으로 풍어를 기원하고 24마당 굿놀이를 펼치는 굿이다.
평안남도 온천 봉죽놀이는 정월 14일에 해 밝아오면 풍물패가 <배따라기>를 노래하는 풍물굿으로 어부의 풍어를 기원하는 출어굿으로 배가 출발하여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부른다. 다시 배가 들어오면 배맞이굿으로 곱새춤·고사리 타령·새고리기 타령 등으로 흥겹게 논다.
함경남도 북청 풍물굿은 북청사자놀이와 곁들인 풍물과 <돈돌라리> 노래에 맞춰 춤판을 벌리는 풍물굿이 있다. 사자놀음은 귀신을 쫓는 형태의 놀이로 남부의 경우는 풍물로 북부는 탈·사자·거북·소 등으로 귀신을 쫓는 차이점이 있다. 돈돌라리는 단오날 북청의 해변 모래산 언덕에서 부녀자들이 나물 캐다가 모여 들어 춤판을 벌이며 노래하는 놀이로 <도라지타령>과 비슷한 가사를 가진다.
함경남도 광천 마당률놀이는 오월 단오날이나 추석에 진행되는 놀이로 외국과 접경지역이기에 풍물이 군악으로 많이 쓰인 지역이다. 먼저 집회장소에서 길군 악장단에 맞추어 행진굿을 치며 길놀이와 판굿을 놀고 난 후 세과장을 펼친다. 첫째 과장은 '마당률'이라 하여 쇠 2명, 북 3명, 장구 1명, 무동 15명으로 구성하 며, 주로 무동이 5·6·7채 장단으로 노는 판이다. 둘째 과장은 타령 장단에 칼춤 놀이 이고, 셋째 과장은 퉁소와 함께 <새타령>·<신방곡>·<애원성>·<아스랑가> 등의 곡조를 연주한다. 이렇듯 행군·검술·군악신호 등
의 의미로 보아 지역적인 국방형 놀이에 가깝다.
함경북도 종성 방천놀이 풍물굿은 초여름, 즉 5월 단오부터 6월 유두날까지의 기간에 자유스러운 여성들의 야외놀이로 두만강 뚝(방천)에서 벌리는 가무잔 치이다. 이 기간은 규방가사의 창작발표회 또는 가무발표날이라 할 수 있겠다. 함경북도 재가승마을 주지놀이는 조선시대에 불교 탄압으로 인하여 승려들이 변 방으로 쫓겨난 집단 거주지 재가승마을에서 보름날 풍물을 치며 탈놀이·병신춤놀 이로 한마당 어울리는 놀이이다. 주지의 탈을 개가죽으로 만들어 쓰고 잡귀를 쫓아내는 불교식 지신밟기 후 굿거리 장단에 넋두리춤을 추는 대동굿 등을 펼친다.
이와같이 남한처럼 두레 풍물로 시작되어 판굿의 연행 형태가 많이 남아있는 모습보다는 다른 놀이와의 결합된 형태가 많이 보인다. 하지만 자료의 미흡함과 실제로 확인할 수 없는 관계로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지만 남한보다는 오히려 더 왜곡되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 본다. 왜냐하면 무분별한 서구음악의 전달과 사물놀이의 영향(?) 없이 독자적인 변화 (발전, 혹은 재창조)로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악기를 보더라도 북한의 국악기는 70년대 말부터 개량 국악기를 선보였고, 장구 역시 개량된 장구가 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