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

비나리는 고사소리이다. 사람의 간절한 소망을 명산대천이나 하느님전에 비는 전통이 우리 신앙사에 있다. 흔히 천지신명에게 빌었다든지, 하느님께 빌었다든지, 정화수를 떠놓고 조왕할머니에게 빌었다든지 하는 우리네 신앙의 전통이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삶의 방식이 달라지고 신앙의 대상이 변천하면서 비는 소리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나리만큼은 수준높은 소리 예술로 살아남아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간절한 소망을 기원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고사소리는 흔히 고사반, 고사덕담이라고 하는 별도의 이름이 있으나 비나리라고 하는 것이 순 우리말이고 소리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고사소리에 대한 예술적 가치는 저간에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남사당패의 후예들이 비나리를 세상에 크게 알려서 비나리의 전통이 다시금 우리의 가슴과 귓전에 생생하게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비나리와 성격이 유사한 소리는 우리 소리의 역사에서 각별하게 나타난 바 있다. 아득한 옛적부터 특정한 사제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던 주술성 높은 무가와 같은 것이 있고, 불교에서 파생된 것으로 흔히 범패를 부르는 엄숙한 자리 뒤에 대중 교화의 방편으로 불렀던 화청(和請)이 있으며, 화랭이와 같은 남성들에 의해서 착안되고 널리 퍼졌던 광대(廣大)의 고사소리 등이 있으며, 농투산이의 심중을 흔들었던 농악대 상쇠의 고사소리가 있으며, 남사당패나 비나리패와 같은 유랑연예집단에 의해서 불렸던 비나리와 같은 것이 있다.

놀랍게도 이들은 인간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인간의 생사번영을 담당하는 부정침의 특정 신격에게 아름다운 말로 기원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 부정칭이라고 하는 것은 예사로운 천지신명, 명산대천, 인간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신격, 인간세계의 가까이에 있는 살아 숨쉬는 신격이기 때문에 명명한 것이고, 실제로는 소리의 대상에 따라서 특정 국면을 관장하는 신격이 있으므로 특수신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소원은 병없이 오래 살고, 재물과 명복을 한껏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희망하는 것인데, 그러한 소원을 특정한 무당, 승려, 화랭이, 광대, 고사소리꾼, 남사당패, 비나리패 등이 대신해서 빌어주면서 이러한 소리가 탄생했으리라 짐작된다.

비나리의 두 가지 특징

이들이 부르는 소리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인간의 갸륵한 뜻을 부정칭의 신에게 전하고자 하기 때문에 대단히 정제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말이 정갈하고 금싸라기와 같은 고조곤함을 은밀하게 담고 있어서 우리말의 속살을 한껏 엿볼 수 있다. 둘째는 실제 그렇지 않은 것을 실제 일어나도록 기원하기 때문에 간절한 주술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어 주술의 극치를 갖추고 있다. 비나리를 들으면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적셔주고 왠지 모를 슬픔과 가슴 저미는 애틋한 소망을 만남으로써, 유일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만나고 더 나아가서 비극적 생애의 감상을 넘어서는 예지를 또한 만나게 된다. 비나리는 이 두 가지 특징을 특별하게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비나리는 남사당패의 소리로 널리 알려졌다. 남사당패는 안성 청룡사와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다. 절을 중창하거나 불사를 일으킬 때에 속가에 가서 반드시 걸립(乞粒)을 하게 된다. 걸립패를 만들 때에 유랑연예집단과 결탁한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남사당패이고, 남사당패는 절걸립의 신표를 가지고 있다. 신표없이는 걸립에도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협조도 구할 수 없으므로 시주와 걸립을 위해서 일정 비율의 걸립 비용지분을 요구하는 계약을 한다. 남사당패와 거래가 많았던 절이 안성 청룡사이다. 이로서 보건대 화청과 비나리의 내용이 같은 이유가 어느 정도 해명 가능하다.

고사 선념불과 고사 뒷념불

걸립패나 남사당패가 부르는 비나리는 대체로 비슷하나 남사당패의 비나리는 특별한 절차와 순서를 가지고 있다. 고사 선념불과 고사 뒷념불로 양분된다. 고사선념불은 절걸립패나 재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자진가락에다 산세풀이, 살풀이, 액맥이, 삼재풀이, 호구노정기 따위의 사설을 엮어 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산세풀이는 명기타령과 같은 풍수지리적 관념의 천지생성과 치국잡기로 이어지고, 살은 인간세상살이에 생겨나는 좋지않은 기운이므로 살을 풀어내는 살풀이가 이어지고, 인간의 복락에 관계되는 삼재를 푸는 삼재풀이가 이어지고, 사람에게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천연두, 홍역, 볼거리 등을 일으키는 호구별상신이 이 땅에 오는 과정을 흥겨운 호구별상 노정기로 형상해서 부른다. 전통적인 질병관과 운명관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곧 고사선념불의 주내용이다. 그래서 살을 풀고, 액은 단걸이로 막고, 삼재는 음양오행법으로 풀고, 호구별상의 이동과정을 추겨 세워서 인간에 불행과 병이 없도록 기원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고사뒷념불은 축원과 덕담으로 일관한다. 그래서 집안에 온갖 영화가 가득하고, 인간의 수명장수가 한없이 이어지도록 기원한다. 고사선념불에는 낯설고 두려운 것을 쫓아내고 예방하는 말이 우세하다면, 고사뒷념불에는 인간의 말 가운데 좋고 아름답고 순결한 것들을 모두 모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을 향기롭게 하고, 생애의 온갖 영화를 가득 안겨주려는 기쁨이 찰랑거리며 넘치는 것이라고 고사뒷념불의 사설을 규정할 수 있다.

비나리 부르는 방식

비나리는 부르는 방식에 따라서 종류가 다르고 소리의 결이 다르게 구성된다.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서 비나리는 치악산조와 관악산조로 나뉜다. 비나리 가운데 치악산조와 관악산조가 있다는 사실은 예전 비나리 명인이나 남사당패 상쇠만이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소리의 구성과 가창 방법에 의한 것이고, 실제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분간하기 힘들다. 이와는 다르게 비나리를 반멕이와 평조 비나리로 구분한다. 반멕이는 구슬픈 느낌이 들고, 평조비나리는 절가 소리가 나는 느낌을 준다. 비나리를 잘했던 남운룡, 양도일, 이수영, 이성호 등의 소리가 있어서 이 두 가지 소리가 구분된다.


● 도움받는 자료
○ 이광수의 소리굿 '비나리', 신나라뮤직,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