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류와 오광대

야류(들놀음)와 오광대의 발생지는 합천 초계 밤마리(경남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라고 전한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그 동쪽지역에 폭넓게 전승되어 온 탈놀이를 '야류(野遊)'라 부르고, 서쪽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탈놀이를 '오광대(五廣大)'라 부른다.
야류와 오광대는 해서탈춤이나 산대놀이와는 다른 풍자성과 고풍스러운 향토성이 짙게 풍기고 말뚝이의 비중이 큰 것이 특징으로 탈은 바가지와 종이를 이용해 만들었다.
 

야    류

야류란 안놀음, 사랑놀음, 판놀음에 대칭되는 넓은 들판에서 노는 놀이로 우리말로 '들놀음'이며 극소수의 한자 소유층이 '야유' 또는 '야류'로 불렀다. 야류는 낙동강 동쪽지역(경상좌도)인 수영, 동래, 부산진 등지에 분포되었던 것으로 약 100여 년을 전후하여 경상우도에서 들어왔다는 설이 있으나 오히려 그 이전에도 이 지역의 토착연희로서의 들놀음이 존재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들판이나 시장의 넓은 공터에서 벌어지는 들놀음은 탈놀이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화려한 길놀이가 먼저 행해지고 탈놀이가 끝난 뒤에는 '대동줄다리기'로 이어지는 비교적 판이 넓은 놀이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들놀음의 특징으로 내세울만한 길놀이가 도외시되고 탈놀이 부분만이 전승의 대상이 되어 변질을 초래했다.
동래(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와 수영(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의 것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 수영야류(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 [대사본 보기]

수영야류는 부산 수영동에서 전승되는 탈놀이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산신제와 함께 거행되던 민속극이다. 탈놀이 이외에도 길놀이, 줄다리기 등 규모가 크고 다양한 행사가 함께 벌어졌는데, 공연하기에 앞서 야류계가 주동이 되어 집집마다 방문하여 액을 막아주는 지신밟기를 해준다. 이 때 거두어들인 곡식으로 탈놀이의 경비를 마련하는데, 일부 놀이꾼은 지신밟기에 참여하지 않고 부정타지 않은 정갈한 장소에서 탈을 제작하였다. 한편 공연 전날 밤에는 각자 연습한 연기를 원로에게 심사 받고 배역을 확정 받는 '시박'을 가졌다.
탈은 바가지로 제작하는데 '사자'와 '담보'는 커다란 광주리를 사용하였다. 모두 12개의 탈을 사용하며 탈놀이가 끝난 후에는 모두 태워 버렸다. 특히 놀이 과장 속의 사자춤은 벽사연상의 신앙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제1과장 : 양반 / 제2과장 : 영노 / 제3과장 : 영감.할미 / 제4과장 : 사자무


● 동래야류(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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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야류는 약 100년 전(19세기 후반) 수영야류에서 파생된 것이라 전하며, 정월대보름 동래시장 앞 네거리에서 수백 개의 제등을 달고 간단한 야외무를 시설하기도 하여 연행되었다. 동래의 '패문'을 중심으로 동부, 서부간의 줄다리기를 하고 이긴 쪽이 축하행사로 탈놀이를 하였다고 전한다. 수영야류처럼 가장행렬을 하였고, 장작불을 지펴 놓은 탈판에 도착하면 고을 사람들이 얼굴에 먹으로 환칠을 하거나 종이탈을 함께 쓰고 어울려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춤을 추다가 밤이 으슥해지고 부녀자들이 귀가하면 그때서야 탈놀이를 놀았다고 한다. 놀이판에서 연희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이 조선시대의 무가(巫歌)와 상도군(喪徒軍)소리 등이다. 춤은 덧보기춤이 주가 된다.
탈의 재료는 바가지이지만 개나 토끼의 털을 얼굴 전체에 붙여 놓은 탈도 있다. 탈들은 각 과장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반영하며 크기와 색깔이 다양하다. 특히 말뚝이의 비중이 큰데, 코나 눈, 귀가 비정상적으로 커다랗게 강조되어 있다. 특히 양반들 가면의 하반부가 움직이게 한 것은 하회탈과 같다. 모두 13개의 탈이 사용된다.
제1과장 : 문둥이(不傳) / 제2과장 : 양반 / 제3과장 : 영노(不傳) / 제4과장 : 할미

 

오 광 대

오광대란 다섯 광대와 놀이,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으로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를 나타내는 다섯 광대가 나와 잡귀를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을 빌어준다. 낙동강을 분계로 서쪽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현재 연희본에 채록된 것은 진주, 마산, 통영, 고성, 가산 등이지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통영(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고성(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가산(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의 것이다.
오광대놀이는 경남 낙동강 상류 초계 밤마리에서 비롯된 탈놀이의 한 분파로 산대놀이 계통의 영남형으로 보기도 하는데, 산대놀이와는 달리 파계승에 대한 조롱장면이 가벼운 반면 양반관료층에 대한 저항의 도가 철저하며 처첩관계 폭로를 통한 봉건적 가족제도에 대한 불만이 다른 민속극에서보다 두드러진다.

● 고성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대사본 보기]

고성오광대는 경남 고성지방에 전승되어 온 탈놀이로 초계 밤마리, 창원(마산), 통영, 고성의 순으로 전파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오광대와 내용이 같으나 의식무와 축사연상의 사자무가 없어 신앙적 의의는 없고 오락 위주의 장터놀이로 놀아왔다. 주로 음력 정월 보름날에 놀았으나 봄꽃이 필 때나 단풍이 들 때도 놀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나무탈이었다고 하나 한일합방(1910년) 당시 나라를 잃은 슬픔에 탈을 강(바다)에 띄워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후부터는 종이로 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모두 20개의 탈이 사용된다.
제1과장 : 문둥북춤 / 제2과장 : 오광대 / 제3과장 : 비비 / 제4과장 : 승무 / 제5과장 : 제밀주


● 통영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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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오광대는 경남 통영지방에 전승되어 온 탈놀이로 창원오광대를 본떠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 중엽 특권층에 대한 상민들의 반발이 풍자가면극으로 나타난 것이다.
놀이꾼들은 정월 2일부터 14일까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잡귀를 쫓아주는 지신밟기를 해주고 이 때 얻은 지원금으로 탈놀이를 준비했다. 제5과장 '포수탈'은 악귀를 내쫓고 벽사진경을 비는 사자춤의 의식무적인 성격이 오락적인 놀이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당과 마당 사이는 막 같은 것을 써서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잇따라 가면과 의상이 바뀐 출연자가 등장하면 다음 마당이 시작하는데, 통상 한 마당이 끝나면 등장인물이 모두 어울려 군무를 춘다. 탈은 나무와 종이로 만들고 놀이가 끝나면 소각제를 지내 모두 태워버렸다. 모두 23종 48개의 탈이 사용된다.
제1과장 : 법고탈(문둥탈)  / 제2과장 : 풍자탈 / 제3과장 : 영노탈 / 제4과장 : 농창탈 / 제5과장 : 포수탈


● 가산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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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오광대는 진주에서 30리쯤 떨어진 해변가의 작은 마을인 가산(사천군 축동면 가산리)이 전승지로 약 3백년의 전통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형태나 내용으로 보아 진주오광대와 같은 분파로 생각된다. 가산은 조선말까지 조창(배로 실어 나르는 곡식을 쌓아두는 곳)이 있어 상업 거래가 많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였다. 그래서 가산오광대를 '조창오광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놀이는 정월 초하룻밤 천룡제를 지내고 지신밟기를 한 다음 대보름에 연희되는데, 초저녁에 공연을 알리는 의미로 조창오광대의 깃발을 앞세우고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고성오광대보다 2-300년쯤 전부터 놀아졌다고 전하며, 양반에 대한 증오심과 일부다처제의 갈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서민들의 애환을 익살과 웃음으로 표현하였다. 모두 34개의 탈이 사용된다.
제1과장 : 오방신장무 / 제2과장 : 영노 / 제3과장 : 문둥이 / 제4과장 : 양반 / 제5과장 : 중놀이 / 제6과장 : 할미.영감놀이

● 도움받은 자료
○ 대구대학교 한맥회 탈춤 자료
○ <'전통극', 우리들의 잃어버린 신명을 찾아서>, 허은, 교보문고, 1999
○ <마당굿 연희본(2) 무형문화재 지정종목>, 심우성, 깊은샘,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