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용어사전

  • 가새진 : 2열 종대로 마주 서서 사람 사이로 빠져 나가면서 전진하는 놀이. 가새는 가위의 사투리이다.
  • 가마싸움 : 가마싸움은 일명 자메쌈 또는 가마놀이라고도 하며 학동들 놀이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각 서당의 학동 중 대표를 뽑아 총사로 삼고 각기 가마와 기를 만들며 가마싸움 준비를 한다. 가마와 기 제작이 끝나면 15일 전까지 가마를 끌고 연습을 한다. 15일이 되면 학동들은 가마를 끌고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기세를 올린다. 마을 주민 모두가 나와 응원을 하고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한다. 마을을 누비고 나서 시장 넓은 마당에 모이면 서로 한참 입씨름을 하다가 총사의 지휘에 따라 접전을 하게 된다. 총사의 지휘에 의해 전진하고 후진하고 좌우로 빙빙 돌다가 틈만 있으면 뚫고 들어가 가마와 가마를 부딪게 하거나 발로 가마를 차고 부순다. 또 적군의 기를 많이 빼앗으려고 한다. 한참 정신없이 싸우다보면 가마는 부서지고 기를 뺏고 빼앗기고 하여 승부가 나게 된다. 승리한 측은 빼앗은 기를 높이 들고 기세도 당당하게 마을을 다시 누비고 다닌다. 이때 마을 사람들도 승리를 축하해 준다. 행진이 서당 마당에 이르면 놀이는 끝이 난다. 가마싸움에 이긴 쪽의 서당에서는 당년에 과거에 많이 합격한다고 하여 학동들뿐 아니라 학부형들도 기뻐하였다고 한다.
  • 가막다기(구럭다기) : ▶ 마디좀놀이.
  • 가얏고 : 손가락으로 뜯거나 퉁겨서 타는 악기. 가야금은 한자말이고 가얏고가 원래의 이름이다. 삼국사기에 가얏고는 나라이름인 가야와 현악기의 옛말인 고의 합성어로서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주 황남동에서 발굴된 토기의 목부분에 새겨진 주악도로 보아 3세기 이전에도 가얏고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신라 진흥왕 때에는 가얏고의 명인인 우륵이 있었는데, 우륵이 타던 12곡은 그의 제자인 게고, 법지, 만덕에게 이어져 5곡으로 정리되었고 신라의 대악으로 채택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가얏고는 대표적인 향악기로 널리 쓰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줄풍류, 시나위, 산조, 병창 등의 연주 악기로 사용되었다. 12줄로 된 가얏고는 거문고의 음색이 웅장하고 남성적인데 비하여 조금 갸날픈 음색으로 여성적이다. 현재 가얏고는 전통음악은 물론 새로 창작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로 또한 가장 대중적인 악기로 쓰이고 있다.
  • 각간치배 : 풍물굿에서 각각의 치배(풍물 구성원)를 일컫는 말.
  • 각시놀이 : 여자아이들이 소꿉놀이할 때 각시를 만들어가지고 노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박쥐놀이라고도 한다. 수수대 한쪽 끝에 옥수수 수염을 달아서 머리를 만들고 이것을 땋아서 댕기를 들이거나 쪽을 지어 작은 막대기로 비녀를 꽂기도 하며 옷을 만들어 입히기도 한다. 어른들이 삼 삼을 때 여자아이들이 삼을 주워다가 입에 넣고 씹어 진물을 뺀 다음 삼실을 말렸다가 실을 추려서 잘 빗은 다음 수수깡을 마디마디 잘라서 한 끝의 속을 파내고 삼실을 꽂은 다음 가르마를 타서 댕기를 땋고 색시옷을 입혀 각시를 만들기도 하고 삼실을 틀어 트레머리를 만들고 노인에 옷을 입혀서 시어머니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신랑, 각시, 영감 , 할멈을 만들고 방을 만들어 세워 놓고 소꿉놀이를 한다.
  • 강강술래 : 강강술래는 앞소리와 받는 소리가 춤의 반주인 소리춤으로서 전라남도의 해안 지역에 퍼져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들의 춤이다. 강강술래는 주로 한가위 밤에 놀아왔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 밤을 비롯하여 봄, 여름, 가을 어느 때던지 달 밝은 밤에 수시로 놀아 왔다. 강강술래의 역사적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많으나, 대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임진왜란과의 연관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대의 제사의식에서 비롯된 놀이라는 것이다. 앞말의 경우는 이순신 장군이 침공해 오는 왜적에게 우리 군사가 많다는 것을 꾸미기 위해서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남장시키고 손과 손을 마주 잡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며 춤추게 했더니 이를 본 왜군들이 질겁을 하여 달아났다는 전설과 관련시켜 그 유래를 밝히려는 시도들이다. 뒷말은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에서 행해지는 제사의식에서 비롯되었거나, 만월제의(滿月祭儀)에서 나온 놀이라는 것과, 마한 때부터 내려오는 달맞이와 수확의례의 농경적인 집단춤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강강술래의 어원에 대해서는 한자기원설로 '强羌水越來' 즉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으로 풀이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왜적을 경계하라는 뜻의 적개심을 높이려는 구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한자풀이에 있어서 잘못된 것으로 억지라는 견해가 많다. 따라서 강강술래는 우리 말 기원설로 강은 원(圓)을 뜻하고, 술래는 수레(輪)를 의미하고, 국한문 혼합기원설로 '강강'의 후음이라든가, 술래는 순유(巡遊), 순라(巡羅)에서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강강술래는 전라도 남해안 지방의 사투리 '강강'은 둥근 원을 만들고 돈다는 뜻이며, '술래'는 도적을 잡는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술래'가 '수월래'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강강술래'로 발음되든, '강강수월래'로 소리나든, 그것에 그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민요의 특질이랄 수 있는 무의미한 음의 반복이나 후렴을 관습적으로 쓰고 있는 여음기원설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주장도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기원과 어원에 대하여 뚜렷이 밝혀 볼 수는 없고 다만 추측될 따름이다. 다만 강강술래가 먼 옛날부터 집단의 대동적인 축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분포지역이 해안지방인 점에서 주로 남자들은 오랫동안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여성들이 마을에 남아 있으면서 달 밝은 밤이면 풍농과 만선을 기원하는 공동굿(제의) 형식으로 발달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강강술래의 구성은 손에 손을 잡아 연결된 상태에서 원을 나타내는 원무가 중심이 되고, 사이 사이에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꺾기, 청어 엮기(풀기), 덕석 몰기(풀기), 지와 밟기, 꼬리 따기, 쥔쥐새끼 놀이, 문 열어라, 개고리 타령 등 부수적인 춤들이 번갈아 가면서 놀아지는데, 새로운 춤으로 넘어갈 때마다 원무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원무는 시작과 끝, 주와 종, 선과 후, 앞과 뒤의 구별이 없이 둥글게 하나가 되는 것으로,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 놓여져 있으며, 강강술래를 통하여 쉽게 공동체의 성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강강술래는 여기에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의 정서와 실제를 노래말로 담아 내고 메기는(앞) 소리와 받는 소리로 그 내용을 공감하며 집단춤을 빚어 냄으로써, 우리가 만들어 가려는 더불어 함께 사는 동아리(세상)를 이루어 내고 있다. 기존의 여러 자료의 형태(영상, 보고서, 놀이 지도서)로서 나타난 강강술래의 노래말과 놀이의 짜임을 살피는 과정 속에서, 노래말이나 소리하는 방식, 놀이의 짜임 등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놀이하는 장소에 따라, 소리하는 선생님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산업사회 속에서 공동체 놀이로서 강강술래를 새롭게 바라보는 문화단체가 많이 생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잊혀져만 가는 대동굿의 요소를 새롭게 살리려는 노력이 줄기차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개꼬리상모 : 판굿에서 쇠잡이가 부들상모를 뒤로 젖히고 발짓으로 부포를 개꼬리와 같이 이리저리 흔드는 놀이. 이것은 부들상모에만 있고 뻣상모에는 없다.
  • 각기목 : 경상도에서 쓰이는 말로, 호적이라는 뜻.
  • 깍쇠 : 장고의 줄을 거는 쇠로 된 고리. 다른 말로 쇠갈고리 혹은 구철이라고도 한다.
  • 갈고 : 장고와 크기나 모양이 거의 같다. 다만 양면의 가죽이 장고의 열채편처럼 모두 얇고 크기가 같으며 두 손에 대나무로 만든 채(열채)를 들고 치며 음을 조절하는 축수(부전)가 양쪽에 있는 점이 장고와 다르다. 양장고라고도 한다. 그 쓰임새가 다양하지 못하고 오래 사용되지 않았고, 영조 이후의 <진연의궤>에 더러 보이며 국립국악원에 그 악기만 전한다.
  • 감영놀이 : 관원놀이
  • 강령탈춤 : 황해도 웅진군 부민면 강령리에 전승되어온 탈놀이. 강령탈춤은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는 문헌이나 확실한 증언은 찾을 수 없으나 몇 가지 자료를 참고하면 조선 후기(19세기)까지는 강령에 탈놀이패가 성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각 지방의 관아에서 베풀어졌던 공의(公儀)로서의 산대놀이, 혹은 세시풍속으로서의 민간의 탈놀이 등을 전제로 한다면, 강령탈춤의 성립은 19세기 보다 훨씬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 강릉단오굿(별신굿) : 강릉 지방에서는 매년 음력 5월 5일에 단오굿이라 불리우는 대규모의 별신굿이 열린다. 음력 3월 20일에 신주(wine)를 빚기 시작하는데 4월 보름날에 서낭신을 맞이하고 5월 6일에 화산으로 끝맺기까지 20여일간 계속되는 영동지방의 큰 축제이다. 단오굿의 주신인 대관령국 사서낭을 맞이하여 강릉시 남문동에 있는 여서낭당에 모셔다가 단오굿의 굿당으로 모시었는데 이 때까지 제관들에 의한 유교적 제의와 동해안 화랭이패에 의한 무교적 굿이 함께 진행된다. 
  • 개인놀이 : 판굿의 뒷판에 한 두 잽이가 놀이판 가운데 나와 그들의 장기를 보여주는 놀이를 개인놀이라고 한다. 개인놀이에는 쇠놀이, 장구놀이, 소고놀이, 잡색놀이, 무동놀이 등이 있는데, 쇠놀이와 소고놀이(벅구놀이)에서 쇠잡이나 법고잡이들이 상모짓하는 상모놀이가 유명하다.
  • 깨금발싸움 : 열살 안팎의 남녀 아이들이 많이 하는 놀이로 절름발이 놀이라고도 한다, 사람 수는 여섯 내지 일곱사람으로 먼저 가위 바위 보로 두 사람의 술레를 정한다. 그리고 둥그렇게 진을 땅바닥에다 그려놓고 쫓는 술레나 달아나는 아이들이나 모두 한 쪽 발을 쥐고 절름발이가 되어 뛰어 돌아 다니는데 술레에게 붙잡힌 사람은 진 가운데 갇히게 된다. 
  • 거문고 : 술대로 줄을 치거나 떠서 연주하는 악기. 일명 현금(玄金)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향비파도 술대로 탔으나 최근에는 술대를 쓰지 않고 가얏고처럼 손가락으로 타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의 재상 왕산악이 중국의 칠현금을 고쳐 만들었다고 하는데 안악 3호분과 무용총의 벽화에도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가 보인다. 이후 거문고는 통일신라 이후 옥보고, 손명득, 귀금, 안장, 청장, 극종으로 이어지며 널리 보급되었다. 오동나무나 밤나무를 붙여 만든 장방형의 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6줄을 걸치고 술대라는 나무막대기로 줄을 치고 뜯어서 소리낸다. 거문고는 백악지장이라 하여 선비의 높은 기상을 나타내는 현묘한 악기로서 널리 숭상되었는데 예전에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볍게 줄을 눌러 탔지만 선조 5년 이후 줄을 밀어 타는 주법으로 발전하여 다양한 기법과 표현력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관현합주에는 반드시 편성되며 독주악기로도 널리 사용된다.
  • 거북놀이 : 정월 대보름 날은 명절이므로 농부들은 풍물을 치고 술 마시고 배불리 먹고 하루를 즐긴다. 여름철에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바빴던 농부들도 정월은 한가하니 오락을 즐기게 된다. 이렇게 노는 놀이 가운데 거북놀이란 두 사람이 엎드리고 매방석을 뒤집어쓰고 목을 짧게 하여 마치 거북이 시늉을 하면서 노는 놀이를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거북을 끌고 풍물패를 앞세우고 마을 큰 집을 찾아 간다. 집 주인은 일행을 맞이하여 술상을 내면 농부들은 춤추고 뛰놀게 된다. 한 집이 끝나면 다음 집으로 찾아간다. 거북놀이는 즐거운 오락일 뿐 아니라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이기도 하다. 거북의 방문을 받으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해서 주인은 마다하지 않고 일행을 환대하는 것이다.
  • 건고 :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타악기의 하나. 가죽으로 만든 북으로 북 중에는 가장 높다. 십자형의 호랑이 받침대의 발 가운데에 긴 기둥을 세우고, 이 위에 북면이 양 옆을 향하게 북통을 모로 뉘인 후, 이층으로 된 상여 모양의 방개를 올린다. 두 층의 방개에는 붉은 빛과 녹색빛의 비단 휘장이 둘러있고 장식이 되어 있으며, 그 위에 날개를 펴고 날으는 모양의 백로가 꽂혀 있다. 조선 초기에 전정헌가(殿庭軒架)와 회례연(會禮宴)의 헌가 등에 삭고, 응고와 함께 배치되었다. 삭고 한 번, 응고 한 번을 차례로 친 다음 축을 3번 치고 건고를 한번 치는 것을 3번 반복하면 본격적으로 음악이 시작된다.
  • 걸궁굿 : 걸궁굿은 '곡식을 구걸하는 고취'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궁중의 나례굿을 행할 때 지방에서 선발된 풍믈패가 상경에 드는 여비를 걷어 쓰게 하던 풍물굿을 '걸량' 또는 '걸굿'이라고 부른 데서 나온 말이다. 정월 16일부터 30일 사이에 많이 하며 2월 1일은 환웅(단군)이 하늘에 올라가는 날이기 때문에 그 후에는 천신의 효과가 없다는 의미로 본다(그래서 우리 민족은 설과 추석이 천지신을 맞는 시간이다. 한해의 생존하는 복을 타는 날이라는 단군신앙이다). 걸궁굿을 다른 마을에 가서 하는 경우에는 그 마을 앞에서 문굿을 쳐서 기능이 합격하여야 마을에 들어간다. 여기서 모든 판굿을 보여서 관람할 의사를 갖게 하는 것이다. 들어오라는 나발신호가 떨어지면 반드시 그 마을의 당산부터 찾아가서 당산굿을 치고 그 마을신을 가정으로 맞는다. 걸궁굿이 끝나고 마을에서 나올 때도 역시 그 마을의 당산에 들러 당산나무에 그 마을의 단군신을 모셔 두고 나오는데 이것을 '들당산굿'과 '날당산굿'이라고 한다. ▶ 연희굿
  • 걸궁패 : 걸립농악을 하는 농악꾼.
  • 걸립굿(걸궁굿) : 집집이 돌며 고사를 지내주고 쌀이나 돈을 걷는 것을 '걸립한다' 혹은 '걸궁한다'고 한다. 또 농악을 치며 갈립하는 의식을 걸립굿.걸궁굿이라 부른다. 걸립굿은 마을에 들기 전에 치는 들당산굿·문굿, 마을에 들어가 치는 당산굿·샘굿, 집안에 들어서 치는 문굿·마당굿·조왕굿·천륭굿·고방굿·외양간굿 등이 있다. 이밖에 뜰에서 치는 도둑잡이굿이 있고, 마을에서 나갈 때 치는 날당산굿이 있다. 집안 고사에는 따로 고사소리나 성주풀이를 부르기도 한다.
  • 걸립패 : 외부에서 와서 풍물을 치고 걸립을 해가는 풍물패를 말한다. 이들은 이를 통해 돈이나 쌀을 걷는다. 걸립패 풍물은 '문굿-당산굿-마당밟이-판굿-날당산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먼저 한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마을 어귀에서 정돈한 뒤 입동(入洞)의 신호로 나발을 세 번 분다. 들어가려는 마을에 실력을 선보이기 위해 들당산굿을 치거나, 영기를 교차하여 세우고 그 앞에 3열로 서거나 앉아서 문굿을 치며 마을의 대표와 교섭한다. 이때 그 마을에서 빗자루를 주면 그만두라는 뜻이고 갈퀴를 주면 들어오라는 뜻이다. 문굿.들당산굿 후에 입동하여 마을 당산에서 당산굿을 친 후 공동우물에 들러 샘굿을 친다. 그리고 몇 집을 돌면서 마당밟이를 해 주는데, 주인이 마루에 소반을 놓고 쌀을 부어 놓으면 목청 좋은 소리꾼이 고사소리를 불러 축원을 해준다. 밤이 되면 대갓집 큰 마당이나 마을 공터에서 '판굿'을 친다. 농기와 영기를 세우고 상쇠의 지휘에 따라 진풀이를 하는데 가락이나 동작 등이 다양하고 치밀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게 한다. 상쇠의 '상모놀이', 장구잽이의 '설장고 놀이', 소고잽이의 '소고춤', '열 두발 상모놀이' 등의 기예를 자랑하고 잡색들도 나와 '도둑잽이굿', '일광놀음' 등의 잡색놀이를 한바탕 벌린다. 초저녁에 시작한 판굿은 밤새 부락민들과 어울리다 보면 새벽 첫닭이 울 때서야 끝을 맺게 된다. 판굿을 마치면 풍물패는 마지막으로 끝맺음굿인 날당산굿을 치고 마을을 떠난다. 모(某) 갑(甲)이의 신분에 따라 낭걸립패, 절 걸립패, 신청 걸립패로 나눈다.
  • 겉바탕 : 판굿은 겉바탕과 안바탕으로 나뉘어지는데 판굿의 앞부분에 안바탕으로 들어가기 전에 진행되는 겉바탕은 질굿에서 호허굿까지 이루어지는 것으로 상쇠와 설장고, 대포수는 쉰다. 겉바탕에서는 치배들의 역량을 위주로 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사물놀이는 앉음반만을 구사하게 되면서 겉바탕굿에 치중하고 있다. (참고 : 안바탕)
  • 겐지겐굿 : 12/8 박자로 이루어진 가락으로 자진모리와 한배가 맞으며, 좌도영산굿에서 쓰인다. 12/8 박자로 이루어진 가락으로 자진머리와 한배가 맞으며, 좌도영산굿에서 쓰인다.
  • 겹박 : 박자가 겹으로 연주되는 것.
  • 경기민요 :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불리워지던 민요를 일컫는데, 이 지역의 민요는 타 지역의 민요에 비해 깨끗하고 경쾌하며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창부타령, 이별가, 청춘가, 태평가, 베틀가, 도라지타령, 오봉산타령, 양산도, 한강수타령, 군방타령, 천안삼거리, 사발가 등을 꼽을 수 있으며, 가락은 대부분 굿거리나 자진모리로 되어 있다.
  • 고깔 : 고깔은 한지 한장을 접어서 만드는데 한지 한장을 길이로 놓고 절반 접어서 이것을 다시 접되 1.5치(寸)쯤 남기고 접고 또 다시 접되 이번에도 1.5치쯤 남기고 접는다. 이 고깔을 뉘어 놓고 맨 꼭대기 양 귀를 잡아 맨다.
  • 고누 : 고누는 우리의 선조들이 많이 즐기던 놀이의 하나로 그 유래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놀이다. 고누는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온 탓에 고니, 꼬니, 꼰질이, 고노 등으로 놀이 자체에 대한 명칭이 다양하다. 또한 각 놀이판의 이름도 다르고 같은 놀이판이라도 지방에 따라 그 놀이 방법이 약간씩 다른 것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특정한 형태로 그려진 놀이판 위에서 정해진 수의 놀이말을 가지고 겨루면서 상대방의 말을 다 잡아내거나 , 못 움직이게 가두거나 상대방의 집을 먼저 차지하는 등 그 기본적인 놀이방법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대신 놀이판이 다양하여 각 놀이판마다 독특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 고동 : 영남농악에서 쓰이는 말로, 긴 나팔을 말한다.
  • 고동진 : 멍석말이. 통영농악에서 쓰이는 말이다.
  • 고방굿 : 고방이란 곳간을 칭하는 말로, 고방굿이란 정초에 지신밟기를 하면서 한 집에 들어가 광에서 치는 굿(입장단: '올해도 풍년이라, 넘실넘실 나락풍년', '고방마다 쌓인 나락 우리농부 피땀일세', '앞으로 봐도 천석군, 뒤로 봐도 천석군, 천년만년 울리소').
  • 고사반 : 걸립패가 고사굿에서 부르는 소리를 고사반이라 부른다. 고사반에는 고사소리군이 길게 부르는 고사소리, 짧게 부르는 고사반, 구호처럼 외치는 고사반이 있다.
  • 고사소리 : 걸립패의 고사굿에서 고사소리굿이 집안의 안녕을 비는 소리로 경기·전라도에서는 매우 길게 부른다. 고사소리에는 신세풀이, 과거풀이, 액풀이, 농사풀이, 성주풀이와 같은 것이 있고, 경기도에서는 따로 뒷염불이라 하여 평조염불(회심곡)이나 반맥이를 부른다.
  • 고싸움 : 전남 광산군 대조면 칠석리 윷돌 마을에서 매해 음력 정월 10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서 벌이던 놀이다. 큰 줄을 꼬아 앞쪽에 고를 짓고 이것을 양쪽에서 밀어서 부딪게 한 다음 상대방의 고를 땅에 내려뜨린 쪽이 이기게 된다.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윷돌 마을이 황소가 쭈그리고 앉은 와우상이라 터가 거세기 때문에 이를 풀어주기 위해 시작하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은 전남 일대의 큰 마을마다 퍼져 있는 이야기로 믿을 만한 것은 못되며 고싸움놀이를 줄다리기 놀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고성오광대놀이 : 영남지방의 탈춤으로써 대표적인 것은 고성오광대와 동래야류와 수영야류가 있다. 이 가운데 고성오광대놀이는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창원군(지금의 마산)의 이군찬이 처음 초계에서 오광대를 배워와서 이하선과 정창술과 더불어 놀았는데, 이하선이 통영으로 이사하게 되어 통영의 장진국에게 배워 주었다고 한다. 또 전하는 말에 의하면 1900년경 마산 출신의 이순호라는 사람이 오광대의 놀이기능을 남촌인 선비들에게 전수 시켰을 것이라고 한다. 이 놀이는 연희 7-8일 전에 고성 몰디 뒷산의 도독골 산기슭 잔디밭에서 연습하여, 정월초 보름 주로 대보름 저녁,장터에서 장작불을 피워 놓고 놀았으며, 인근에서 많은 남녀노소가 모여들어 구경했다고 한다. 고성오광대는 수영야류의 경우와는 달리 신앙적인 의의는 없고, 다만 오락위주의 장터의 놀이로 놀아왔다. 연희자들이 일심계를 조직하고, 한가한 봄철에 밤내 자갈밭에 모여 오광대를 놀고, 물고기를 잡아 천렵을 하면서 하루를 즐겼다. 피리, 젓대, 해금, 거문고, 장고, 북, 꽹과리 등 이른바 삼현육각을 연주하였으나, 근년에 와서는 장고, 북, 꽹과리 등 타악기만으로 연주한다. 반주악은 주로 굿거리 장단이며 춤은 즉흥적인 이른바 덧배기춤을 춘다. 마당놀이였던 고성오광대는 특별히 마련되는 것이 아니고, 장터나 그 밖의 놀이마당에서 연기하는 한 편에 악공들이 앉고, 관객들은 그 둘레에 둥글게 모여 구경하였다. 저녁에는 놀이마당 옆으로 장작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악공들이 앉았다. 고성오광대의 놀이과장은 크게 5 과장으로 나누어진다. 제 1 과장 문둥광대춤, 제 2 과장 오광대, 제 3 과장 승무, 제 4 과장 비비, 제 5 과장 제밀주(제물집 혹은 작은어미)등이다.
  • 공후 : 고대의 현악기. 와공후, 수공후, 대공후, 소공후, 봉수공후로 나누어지나 대개의 옛 문헌에서는 이를 구별하지 않고 다만 공후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7세기 수서에는 고구려의 악기로 수공후와 와공후가 있고 백제의 악기로 공후가 써있다.공후는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조선시대에 까지는 전승되지 않았다. (참고 : 수공후, 와공후, 소공후)
  • 관악기 : 관악기는 쇠, 나무, 대나무로 된 관 안에 김을 불어넣어서 소리내는 악기이다. 크게 대금과 같이 가로로 부는 악기와 단소와 같이 세로로 부는 악기로 나눌 수 있다. 또 소리내는 방법에 따라 대금, 소금, 활 같이 병을 부는 원리로 소리내는 악기, 피리나 태평소와 같이 혀를 꽂아서 부악기, 생황같이 떨림판을 울려서 소리나는 악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관원놀이 :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등지에서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마을사람들이 관원놀이를 하였다. 정초 첫 정일을 중심으로 전삼일 후삼일은 마을 사람들이 근신하며 치성을 드리고 이어 제삼일에 마을 고제당의 서낭신에 제사를 올린다. 13일에는 남병사,중군,부사 등 놀이에서 관원으로 나올이에게 사령장을 보내는 바 전령사와 농악대와 놀이꾼들이 사령장을 들고 오면 받은 집에서는 음식을 푸짐하게 내어 놓는다. 밖에 전령사 일행은 농악대를 앞세우고 집집이 들러 사자놀이등 여러 놀이를 놀아 준다. 14일 아침이 되면 놀이꾼들은 말을 여러 필 준비하여 농악대를 앞세우고 풍악을 울리며 관속, 군수, 중군, 남병사를 순서대로 모시고 시음당에 당도하여 총정비한 다음 행진을 하여 성을 한바퀴 돌고 나서 고제당에 이른다. 여기에서 관원은 좌정하고 죄인을 다스리는 놀이를 하고 나서 음식과 술을 나눠 먹으며 흥겹게 논다. 그리고 무동들이 장수탈을 쓰고 연풍대 춤을 추고 나면 놀이꾼들이 사자탈을 쓰고 사자춤을 춘다. 사자춤이 끝나면 구경꾼들도 소리를 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오후 쇠나팔을 불면 늦게 해산한다. 15일에도 전날과 같이 놀이가 재현되고 보름달이 솟으면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젊은이들이 두편으로 갈라서서 횃불싸움을 한다.
  • 교방고 : 북면이 위를 향하게 하여 네 기둥이 달린 틀로 받친 악기. 고려 예종 이후 중국에서 새로 들어온 악기로 조선시대 궁중의 속악에 널리 사용되었다. 행악 때는 틀 밑에 긴 장대 둘을 가로지르고 그것을 네 사람이 메고 걸어가면서 쳤으며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 구음(口音) : 입장단
  • 구정놀이 : 개인(個人)놀이를 말한다.
  • 군고(軍鼓) : 군진법(軍陣法)을 위주로 하는 농악의 개념에서 보는 '농악'이라는 뜻이다. ▶ 금고(金鼓)
  • 군물 : 풍물굿이 전쟁에도 소용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풍물을 군물이라 일컬었다. 풍물은 군사훈련 뿐만 아니라 실전에서도 많이 쓰였다.
  • 군쇠 : 밀양농악에서 쓰이는 말로, 잽이들이 멋을 부린다는 뜻.
  • 군영놀이 : 구종놀이(鼓鍾戱)가 군악에서 군영으로 변형된 듯하다. 우도풍물에서 개인놀이의 형태지만 여기서는 잡색까지도 자기의 재주를 보인다.
  • 군총 : 군진(軍陣)풀이를 주로 하는 농악.
  • 굿 : 모든 지방에 걸쳐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로 '굿친다'라는 표현을 쓴다. 굿의 의미는 원래 '모인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모여서 공동체 안의 모든 일을 의논하고 풀어 가며, 공동체적 바람을 집단적으로 빌며 집단적 신명으로 끌어 올려 새로운 삶의 결의를 다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 내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무속에서의 신앙적 뜻만을 가리키는 흐름이 있다.
  • 굿물 : 굿에 쓰이는 기물을 가리킨다. 즉, 농악에 쓰이는 악기, 기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쓰인다. 또 풍물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 궁글채 : 장구에 있어서 왼쪽의 낮은 음이 나는 채.
  • 금 : 가로로 부는 악기. 삼죽(대금, 중금, 소금)중 가장 크며 젓대라고도 한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여러 해 묵은 황죽(黃竹)으로 만든다 하였으나 현재는 살위고 단단한 쌍골죽(雙骨竹:골이 양쪽으로 파인 대나무)을 제일로 친다. 취구 1개공 1개, 지공이 6개가 있으며 예전에는 아래 끝에 칠성공 5개가 있었다고 전프愎. 김을 넣는 강도에 따라 저취, 평취, 역취의 법이 있다. 특히 부드러운 저취아한 평취,갈대청의 진동을 곁들인 장쾌한 역취가 다양한 음빛깔로 어우러져 맏 반의 음역을 넘나들어 독주악기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악학궤범에는 대금과 중금, 소금이 크기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지만 그 음역과 운지법이 같다고 한다. 현재 소금은 없어지고 대금은 조선 성종이후 연주법이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금고(金鼓) : 풍물의 악기가 금속성악기(꽹과리, 징)와 고(鼓:가죽)악기(북, 소고, 장구)로 구성되기 때문에 풍물을 '금고(金鼓)'라 하기도 한다. 또 일부지방에서는 풍물을 군악(軍樂)으로 보아 '군고(軍鼓)'라 일컫기도 한다.
  • 기세배굿 : 마한의 농사놀이에서 '소도'라는 깃봉에 방을 달고 출입을 금지시킨 풍속의 기록이 중국에 있는데 지금은 기세배굿으로 남아 있다. 마을이 생기면 마을 신의 깃발인 농기를 제작한다. 그러나 신의 정기가 없어서 인근의 먼저 생긴 농기에서 신의 정기를 불로 붙여 오는 깃발의 세례이다. 단군의 깃발에서 점점 내려와 마을 교회당의 신상(神像)으로 쓰인 셈이다. 상고시대에는, 하늘의 신을 어른 마을에서 당산제굿을 하면서 받아 내려서 인근마을에 세배하는 예식으로 내려주는 종교적 예식이었다. 그 깃발을 들고 집에 들어가면 집안이 축복 받고 논에 가면 단군신의 힘으로 풍년이 든다는 신앙이다.
  • 길군악 : 풍물에서 행진할 때 쓰이는 쇳가락의 총칭. 일명 질굿ㆍ길굿ㆍ질매구ㆍ길꾸내기ㆍ엇모리형 장단과 자진모리형 장단으로 대별되는데 전자가 고형이다. 경북ㆍ경기ㆍ경남농악의 길군악, 경기농악의 마당일채, 길군악7채, 호남 우도농악의 오채질굿ㆍ좌질굿은 엇모리형이거나 이의 변주형으로 전자에 해당하고 호남 외마치질굿과 다른 고장의 질굿은 후자에 해당한다.
  • 길군악7채 : 경기도 풍물에서 행진에 쓰이는 쇳가락의 하나. 3분박과 2분박이 3+2ㆍ3+2ㆍ3+3ㆍ3+3ㆍ3+2ㆍ2+3. 3+2로 구성되며 꽹과리는 '깽-ㆍ갠지갱 깽-ㆍ갱-ㆍ갠지갠ㆍ갱-개깽-' 징은 7점을 친다. 이 쇳가락은 경기도 농악의 독특한 가락이며 경기도ㆍ강원도 영서ㆍ충청도 북부지방에 두루 쓰인다. 행진음악과 판굿에서 멍석말이에 쓰이며 매우 씩씩한 느낌을 준다.
  • 길굿 : 길놀이로 치는 농악.
  • 길쌈놀이 :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왕(유리왕)이 이미 6부를 정하고 이를 반으로 나눈 뒤 두 왕녀로 하여금 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였다.7월16일날부터 새벽에 시작하여 밤 10시에 이르기까지 부의 큰 마당에 모여 길쌈을 하게 하였다. 한가위날 그 결과를 심사하며 진편에서는 이긴 편에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 때에 춤과 노래의 잔치가 벌어지는데 이르 가배(가위의 뜻)라고 하며 진편의 여자가 일어나 -회소 회소-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맑아서 뒷날 사람들이 이 소리에 따라 노래를 짓고 이를 회소곡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근래까지 전승되어 농촌 부녀자들이 7월에서 8월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길쌈을 하였으며 이를 모시두레, 돌개삼이라고도 불렀다. 길쌈이 끝난 뒤에는 노래와 춤과 음식으로 성대한 잔치를 벌여 그 동안의 피로를 씻었다.
  • 꼰두쇠 : 전문적인 풍물잽이. 경기도에서 쓰이는 말이다.
  • 꽃수건 : 고깔 안에 동여맨 수건. 경기도 이천에서 쓰인다.
  • 꽃트림 : 백중(百中)날 농악꾼을 사서 마을사람들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주로 호남농악에서 쓰인다.
  • 꽹맥이 : 꽹과리. 주로 호남농악에서 쓰이는 말이다.
  • 꽹쇠 : 꽹과리.

    ● 도움받는 자료
    ○ 뉴욕풍물패 한누리 풍물사전, 1999
    ○ 충남대 농과대 풍물패 '아리랑' 풍물용어사전
    ○ <풍물굿에서 사물놀이까지>, 김헌선, 귀인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