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용어사전

  • 다드래기 : 쇠가락의 하나. 3분박 매우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거나 2분박 매우 빠른 4박자(4분의 4박자)이다. 매우 빠른 가락을 모두 다드래기라 부른다. 쇠가락 끝에는 다드래기로 몰아간다. 구성지고 씩씩한 가락이다.
  • 다드걸립패(나루걸립패) : 지역 유지들이 다리·나룻배를 보수하기 위한 자금을 걷기 위하여 조직된 걸립패.
  • 다리굿 : 걸립패기 지나다가 다리르 건너기 앞서 치는 고사굿. 고사반은 '앗다, 그 다리 잘 놨다. 치렁치렁 건너가자'하고 구호로 외친다.
  • 다리밟기(답교놀이) :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개천 또는 강의 다리 위를 끝에서 끝까지 자연스런 춤을 추면서 장고, 피리, 호적 등을 불며 건너 다니는 놀이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고 옛 문헌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 왕조 태종 이후에 크게 성행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답교놀이'라고도 하며 새해를 맞이하며 앞으로 일년간에 있을 모든 액운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데 그 뜻이 있다. 즉, 사람의 다리와 그 음이 같은 다리를 밟음으로써 다리병을 예방하고 그 밖의 잡병이나 재난등을 일소하여 탈 없이 한 해를 보내고자 하는 것이 이 놀이의 내용인 것이다. 
  • 단소 : 퉁소보다 조금 작은 관악기. {악학궤범}을 비롯한 어느 문헌에도 이 악기가 소개되어 있지 않아 조선말기에 향악기화한 퉁소를 작은 형으로 만들어 쓴 것으로 추측된다. 음색이 청아하여 독주 악기로서 애용되고 주로 실내악적인 줄풍류 등에 편성된다.
  • 달어치기 : 우도굿에서 상쇠가 호호굿을 마친 다음에 원의 대형에서 뒤로 돌아 부쇠.종쇠.징.장고들 사이로 빠져나오면 모두 앞사람 뒤에 붙어서 따라 나오는 놀이이다.
  • 당산굿 : 풍물패가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님께 인사하는 것. 지난해의 은덕을 감사하고 새해의 보살핌을 빌고, 동네 각집에 행운이 깃들게 해달라고 발원한다. 호남 우도의 당산굿은 깃발이 방대하고 느린 박자를 사용하지만, 좌도풍물굿과 비슷하다. 모든 풍물굿이 시작될 때에는 당산으로 가서 연주하는 들당산굿을 치고 당산신을 모셔 내려온다. 역시 신의 깃발을 들고 매굿.보름굿.걸궁굿.두레굿 등에서 신으로 군림하여 역귀를 쫓고 축복을 받는 행사이다. 이렇게 굿이 끝나면 풍물대는 또다시 당산에 가서 신의 깃발을 당산에 내리게 하고 돌아온다. 이러한 깃발은 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두 깃발이 만나면 서로 비켜주지 않는다. 자기의 신을 노엽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른 부락의 깃발을 넘어뜨리는 싸움(함열 농기뺏기)도 있다. 당산굿은 마을사람 모두의 염원을 표현하고 전체의 의사를 수렴시키는 기능을 해왔다. 종교적인 기원의식으로서 풍물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가장 신성시하고 중요시해온 것이다.
  • 당산제 : 음력 1월 9일에 시행하며 먼저 할미당산부터 제사를 지내는데 영기(令旗)가 없이 풍물굿이 참여하고 제사장(밑집)에 내려와서 다시 준비하여 당산(아랫당산)의 제사는 영기(삼지창)를 챙겨 농기와 같이 행진한다. 이때에 영기나 농기가 넘어지거나 나무에 스치면 불길하다고 하여 조심한다.
  • 당적 : 높은 음역을 연주하는 가로부는 관악기. 황죽 또는 쌍골죽으로 만들며 취구 1개와 지공 7개가 있으나 제 7공은 사용되지 않는다. 음높이와 음넓이도 대금과 비슷하게 변하였으나 다만 선율의 장식음이 더 많다. 맑고 영롱한 음색과 약 2 옥타브 정도의 음역을 갖는다. 원래는 당악기였으므로 당악 음정을 가졌으며, 성종 이후로 당적의 이름만 남았을 뿐 완전히 향악기화 하여 현재에 이른다.
  • 당피리 : 당악기의 한가지.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문종 30년 대악관현방(大樂管絃坊)에 당피리를 가르치던 필률업사를 두었고 예종 9년 송나라의 신악이 들어올 때도 피리 20관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 악지}의 당악기 조에 소개된 당피리는 9공이었는데 현재는 8공의 피리로 전해진다. 주로 당악계통의 음악에만 편성되어 보허자, 낙양춘, 여민락만, 여민락영, 정동방곡 등의 연주에 중요하게 사용된다. 당악에 편성되던 다른 악기와 마찬가지로 황종(c')에서 청림종(b') 또는 청남려(a')까지 한 옥타브 반의 좁은 음역을 갖는다.
  • 대금 : 1)가로로 부는 악기. 삼죽(대금, 중금, 소금)중 가장 크며 젓대라고도 한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여러해 묵은 황죽(黃竹)으로 만든다 하였으나 현재는 살이 두껍고 단단한 쌍골죽(雙骨竹:골이 양쪽으로 파인 대나무)을 제일로 친다. 취구 1개, 청공 1개, 지공이 6개가 있으며 예전에는 아래 끝에 칠성공 5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을 넣는 강도에 따라 저취, 평취, 역취의 법이 있다. 특히 부드러운 저취, 청아한 평취,갈대청의 진동을 곁들인 장쾌한 역취가 다양한 음빛깔로 어우러져 2옥타브 반의 음역을 넘나들어 독주악기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악학궤범에는 대금과 중금, 소금이 크기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지만 그 음역과 운지법이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 소금은 없어지고 대금은 조선 성종이후 연주법이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대금 : 2)징과 같은 종류의 악기. 종묘 제례때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의 음악인 정대업을 연주할때 편성되었다. 북은 전진, 대금은 후퇴를 뜻하는데 아헌은 진고를 열번 침으로써 시작되고 종헌은 대금을 열번 침으로써 끝난다.
  • 대삼 : 움직임을 크게 하라는 뜻.
  • 대쟁 : 손가락으로 뜯거나 퉁겨서 타는 악기. 중국의 쟁은 13현이고 대쟁은 15현이다. 고려 예종 때 전래되었으며 {악학궤범}에 의하면 대쟁의 제도는 슬과 같고 다만 대쟁은 몸이 작고 네모에 오목을 붙이며 그림이 없다. 주로 당악에만 쓰이며 음역은 당피리나 아쟁보다 비교적 넓어 황종(C)에서 두 옥타브 위의 황종(c")에 까지 이른다. 그러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 덧뵈기꾼 : 부산지역 농악에서의 농악꾼.
  • 덧배기친다 : 농악을 한다. 부산지방에서 쓰이는 말이다.
  • 덩덕궁이 : 쇠가락의 하나. 3분박 조금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다. 고사굿·판굿에 두루 쓰이며 상모놀이에는 이 가락이 주가 된다. 매우 구성지고 흥겨운 가락이다. 다른 말로는 떵떵이, 살풀이라고도 한다.
  • 도 : 북 하나를 긴 장대에 꿰어 매단 악기로 이미 성종 때에 편찬된 {악학궤범}에 서도 그림만 전할 뿐 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도당굿 : 도당굿(都堂굿) 중부지방에서 행해지는 마을굿의 하나. 한자어로 도당제(都堂祭)라 표기하기도 한다. 마을의 안과태평과 풍요를 목적으로 매년 또는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초나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진다.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지방에서 강신무(降神巫)들이 행하는 굿과 수원·인천 등지에서 세습무들이 하는 굿으로 나눌 수 있다. 도당굿을 하는 마을에서는 주민 가운데 초상이나 해산이 없었던 깨끗하고 덕 있는 사람으로 대표를 뽑아 굿을 주관하게 하는데, 비용은 각 집에서 추렴한다. 추렴은 단순히 돈을 거두는 형식만이 아니고 마을 전체가 굿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마을의 전통과 무당의 성격에 따라 굿의 순서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인천·부천 등 경기도 남부지방에서 세습무가 주관하는 도당굿 절차 및 진행과정을 보면, 굿은 마을의 신당이나 신목(神木)이 있는 근처에 차일을 치고 굿당을 꾸며 행하게 되는데 맨 먼저 무당은 부정굿으로 굿당을 깨끗이 정화한다. 부정굿이 끝나면 마을의 당(堂)으로 도당신을 모시러 가는 '도당모시기'를 한다. 주민 가운데 한 사람에게 대를 내려 도당신이 강림한 것을 확인하는 '대내림'이 행해진다. 이어서 굿패는 '돌돌이'를 하는데 이것은 무당패들이 마을의 우물·장승·집등을 무악을 울리면서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도당신의 영력으로 잡귀를 몰아내고 마을 전체를 정화시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굿당에서 돌아와서는 당금애기신화가 구송되고 바라춤을 추는 '제석굿'을 하고, '본향굿'에서 도당할머니·도당할아버지를 모신 뒤 손굿(또는 손님굿)에서 천연두신인 손님을 청하여 마을에 질병이 돌지 않기를 기원한다. 다음에 잡귀를 쫒아내는 군웅굿을 한 뒤, 굿을 시작할 때 굿당으로 모셔왔던 도당신을 다시 마을의 당으로 돌려보내는 '도당 모셔다 드리기'를 한다. 맨 마지막으로 '뒷전'에서 굿에 따라든 잡귀들을 풀어먹여 보낸다. 도당굿은 남부지방의 당산굿·별신굿이나 중부이북지방의 당굿·대동·부군당굿·살륭굿 등과 그 성격과 기능면에서 같다. 이러한 도당굿은 남성 중심의 유교식 동제에 비하면 여성의 참여가 활발한 편이다. 마을 대표 몇 명만이 제관이 되어 엄숙하게 진행되는 동제와 달리,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여 함께 먹고 마시고 가무를 행함으로써 축제의 성격이 강해진다. 따라서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고 자기 마을에의 긍지를 높이며 동질감을 회복시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도당굿은 무속이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면서 급격히 소멸하여 현재는 농사를 짓던 서울지역의 몇몇  마을에서 소수 노인들에 의하여 명맥이 유지될 뿐, 마을 신앙으로서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 도둑잽이굿(도둑잡이굿) : 풍물굿에서 연희적인 성격을 띤 거리로 흥미로운 내용이 전개된다. 대포수와 상쇠의 재담으로 시작하여 방울진.화투.투전판 등을 벌이면서 대포수가 도독이 되어 도망치면 상쇠가 재주껏 잡아내어 문초하고 목을 베고 죽은 후에는 다시 의원을 부르고 침을 놓아 살려내는 등의 연주이다. 도둑의 목을 벨 때에는 "왜장.청장놈의 목을 베어라"하고 말을 하는데 일제시대에서도 관헌을 피하여 한밤에 공연하였다. 여기에서 도둑은 왜적과 청나라까지를 뜻하는 말로서 동학군의 놀이로 짐작된다(동학교주 전봉준과 김계남이 필봉마을 인근에 있는 회문산으로 왔거나 오다가 체포되었음). 여기서는 풍물굿을 '군물(軍物)'이라고 말한다.
  • 도청 : 호남지방에서 농악대를 지도하는 어른을 말한다.
  • 돌굿 : 상쇠의 쇠가락으로 시작과 끝을 알리며 싸잽이 박자로 춤을 추다가 쇠와 징의 강박 신호에 따라서 그치거나 대형이 바꾸어지며 돈다. 또는 길굿 가락으로 치다가 징이 1박 빠르게 장고 박자로 치면 상쇠는 곧바로 다른 박자로 바꾸고 이어서 대형이 바뀌며 돈다.
  • 돌돌이 : 마을을 돌아 다니는 것.
  • 동래야류 : 거의 전해지지 않고 그저 1870년대에 전파 되었고 19세기 후반에 그 지방의 민속탈춤으로 정착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형성연대와 전파 경로에 대해서는 현지 조사의 결과가 거의 비슷한 데, 송석하에 의하면 1870년대에 그 고장의 탈춤으로 형성되었으리라 한다. 동래에서는 노년층과 부녀자들이 들놀음이라 이름을 더 많이 쓰고 있고, 유식층과 젊은층은 야류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데, 들놀음이란 우리말이 원래의 용어이고 야류는 한자 역어인 것이다. 오광대와 달리 들놀음은 탈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길놀이와 덧배기춤와 탈춤놀이를 한 데 묶어서 이르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들놀음을 하는 날 해가 지면 부산다리, 범어교, 염창 마당에 모여서 탈춤놀이 장소 즉 패문루 앞을 향하여 가장행렬인 길놀이를 한다. 길놀이에 참가 했던 사람과 신명있는 고을 사람들이 얼굴에 먹으로 환칠을 하거나 참종이탈을 쓰고 함께 어울려 굿거리 장단에 맞춰 덧배기춤을 추는 집단난무가 벌어진다. 이때 학춤, 장기춤, 배꼽춤, 궁둥이춤, 구불춤, 꼽추춤, 홍두깨춤 등 각자의 특기를 보여 사람들을 웃긴다. 이렇게 춤을 추다가 밤이 깊어 아녀자들이 귀가한 다음에 탈놀이가 시작된다. 동래야류의 놀이과장은 동래의 고도들이 기억하기로는 양반 과장과 할미와 영감 과장의 두 과장뿐이었다. 1965년 재현 할때에도 연희자들은 이 두 과장만을 놀았다. 그러나 동래야류에 영향을 주었다는 수영야류에는 제 2 과장 영노가 있고, 또 석남민속유고도록에 보면 동래 말뚝이와 문둥이 탈 사진이 있어, 1937년 중일전쟁이 나기 직전까지 놀았다는 동래야류에는 문둥이 과장, 양반 과장, 영노 과장, 할미와 영감 과장의 4 과장이 있었음을 추측케 해 준다. 그 뒤에 문둥이와 영노 과장이 약화 되고 탈락되어 1965년의 재현 할 때에는 말뚝이 재담의 장(양반과장)만이 당시의 연희자들 기억에 남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 동살풀이 : 장단의 한종류. 설장구 가락 중에 나온다.
  • 동채싸움(차전놀이) : 동채싸움은 경북 안동지방에 전승되어 오는 놀이로 일명 차전놀이라 한다. 주민이 동서 양편으로 나뉘어지고 각 편의 대표들이 동채싸움을 벌이기로 결정하면 동채제작에 들어간다. 동채나무는 길이와 굵기가 보통 서까래만한 것으로 한 끝을 가위 모양으로 엇갈리게 놓고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매며 ,둥근 방석을 가운데에 달아둔다. 지휘자는 이 방석 위에 올라서서 자기편을 통솔하며 힘 센 동채꾼들이 동채의 네귀를 어깨에 멘다. 그리고 머리꾼이라고 하여 건장 한 청년들이 동채 주위에 둘러서서 대장을 호위하는 한편 팔짱을 끼고 상대를 어깨로 밀거나 돌격해 들어가서 적의 대장을 동채에서 끌어내리고 동채를 깔아눕히는 구실도 한다. 이긴 쪽에서는 짚신을 벗어서 하늘 높이 던지고, 상대방 동채의 방석을 뜯어서 흩뿌리며 승리의 격에 취한다. 이들은 '월사 월사 동부(또는 서부) 이겼다'고 소리를 지르며 본부로 돌아간다. 응원하던 군중들도 농악대의 가락에 따라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르고 춤을 추며 이들의 뒤를 따른다.
  • 돛대 세우기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우고, 앞으로 나가면서 부포가 오래 서있게 해 배에 돛대가 서 있는 모습과 같이 하는 재주.
  • 두렁쇠 : 전통적인 용어로 마을의 상쇠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두렁쇠는 뜬쇠와 같이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마을 정서에 잘 맞고 투박하고 가슴 밑바닥을 적셔주는 신명을 갖고 있다. 또한 두렁쇠 가운데 우두머리를 뽑아 뜬쇠라고 한다. (참고 : 뜬쇠)
  • 두레굿(두레풍장) : 농사철에 모내기.김매기 등을 하면서 두레가 조직되는데, 그때 일을 하면서 효율을 올리기 위해 하는 굿이 두레굿(두레풍장)이다. 두레풍장은 아침소리(들풍장), 점심소리(도돌이풍장), 저녁소리(잦은풍장), 집에 돌아오는 소리(날풍장) 등으로 구별되는데 두레풍장과 함께 어울려 구성진 노래가 곁들여짐으로써 노동판을 예술판으로 승화시키는 슬기로움이 돋보이는 것이 두레풍장의 묘미이다. 노동을 하기 앞서 신명을 돋구어 일터로 나가고, 모노래 가운데 아침나절의 노래를 메기고 받으며 같은 순서로 점심노래, 저녁노래를 차례에 맞추어 부르고 치며, 일을 마치고 신명나는 가락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으례껏 등장하는 두레풍장의 과정인 셈이다. 두레풍장은 신명을 돋울 뿐만 아니라 일을 수월하게 꾸려나가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호남 좌도의 두레굿을 예로 보면, 두레 김매기로 세 벌 김매기 할 때에 나발을 3초(3번) 불어서 풍물대와 일꾼을 모아 당산에 들러 온 다음 논두렁에 농기를 세운다. 농사꾼의 앞에서 풍물굿이 선도하며 잡신(병충해)을 쫓고 농기에 모셔진 당산신의 위력으로 풍년이 들게 하는 신앙농사이다. 이때에 농사가 잘된 집은 그 집 머슴을 소에 태우고 집으로 가서 놀기도 한다. 호남지방에서 논에 들어가 치는 풍장은 꽹과리, 장구, 소고로 편성되며 소고잡이는 풍장옷에 어사화를 쓴다.
  • 두레패 : 농촌에서 농민들이 협동으로 일하기 위한 노동 조직체를 두레라 부른다. 두레를 조직하는 것을 '두레한다'고 한다. 일감에 따라 김메기 두레, 풀베기 두레, 삼삼기 두레가 있다. 김매기 두레는 논에서 김을 매기 위해 짠 두레이고, 풀베기 두레는 퇴비로 쓸 풀을 베기 위해 짠 두레다. 또 삼삼기 두레는 실을 뽑기 위해 짠 두레이다. 김매기 두레에는 두레굿, 두레풍장이라 하여 김매며 농악을 친다.
  • 뒷손 : 꽹과리를 잡은 왼손.
  • 뒷풀이 : 농악이 끝나고 구경꾼들과 합세하여 춤추는 것.
  • 들당산굿 : 걸립패가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동구 밖에서 치는 굿. 주로 호남지방에서 쓰인다.
  • 등맞추기 : 쌍쌍이 등을 대고 일제히 앉았다 섰다 하는 놀이.
  • 뜬쇠 : 전통적인 용어로 전문 상쇠, 혹은 전문예능인을 가리키는 말. 뜬쇠의 경우 재주가 세련되기 그지없고 풍물굿의 진수를 용해시킨 재간꾼들이다. 두렁쇠의 우두머리가 흔히 뜬쇠 노릇을 하기도 하며 예외적으로 남사당패의 경우처럼 재주만을 파는 뜬쇠도 있다. 그러나 두렁쇠를 거쳐 뜬쇠에 이른 이들이 풍물굿의 참다운 내력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 : 두렁쇠)
  • 띠뱃놀이 : 서해의 '위도'라는 섬에 전해져 내려오는 특유의 민속놀이이다. 1978년 춘천에서 열렸던 제19회 전국 민속 예술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적이 있다. 매해 정월 초사흗날이 되면 위도 사람들은 풍어와 섬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띠뱃놀이를 한다. 섣달 스무날경 산마루 절벽위에 서있는 원당에 금줄을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부정을 타지 않게 하는 '원당제'로부터 시작된다. 초사흗날 아침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은 춤을 추며 원당으로 향한다. 원당에 도착하면 동쪽에 청색기,서쪽에 백색기, 남쪽에 적색기, 북쪽에 흑색기, 중앙에 황색기를 꽂고 제사를 지낸다. 이때 촌장이 나와 축원을 올리며 사람들은 차례로 절을 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원당제가 끝나면 배를 부리는 사람들이 자기 배에 서낭을 모시는 내리받이 굿을 한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농악을 치면서 산을 내려와 마을 앞 당산 나무아래에 모여 굵은 동아줄을 어깨에 메고산을 휘돌아 땅기운을 밟는 지신밟기를 하며 춤과 노래판을 벌인다. 당산제가 끝나면 농악대를 앞세운 사람들은 바닷가로 가서 '용왕제'를 진행한다. 무당이 '바다를 향해 제배'하고 외치면 사람들은 일제히 바다를 향해 큰 절을 올린다. 무당은 풍물가락에 맞춰 흔들고 뛰며 큰소리를 주문을 외운다. 이때 장정 몇사람이 길이가 약 3m , 폭이약 2m 정도 크기로 만든 '띠배'를 어깨에 메고 나온다. 그 뒤를 따라 아낙네들이 용왕에게 바칠 '회식밥'을 이고 나온다. 무당과 마을 사람들이 소리르 메기며 춤을 추는 동안 띠배에는 액운을 상징하는 허수아비가 세워지고 마을기를 꽂아 띠배를 모선에 연결시킨다. 모선은 재앙을 가득 실었다고 믿는 띠배를 멀리 칠산 바다로 끌고가서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하는데 이로써 띠뱃놀이가 끝이 난다.

    ● 도움받는 자료
    ○ 뉴욕풍물패 한누리 풍물사전, 1999
    ○ 충남대 농과대 풍물패 '아리랑' 풍물용어사전
    ○ <풍물굿에서 사물놀이까지>, 김헌선, 귀인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