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검무 (晋州劍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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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형문화재 제 12호

진주검무는 경상남도 진주지방에 전승되는 검무를 가리킨다. 검무는 여러 무원< 舞員 >들이 전복< 戰服 >을 입고 전립< 戰笠 >을 쓰고 서로 맞서서 양손에 갈라 쥔 칼을 휘저으며 추는 춤으로, 문헌에는 검기무< 劒器舞 >로 나오고 속칭 칼춤이라 부르기도 한다. 칼춤은 민족마다 있는 것이니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칼춤이 있었겠으나 상고시대의 칼춤에 대한 것은 알려진 바 없다. 『동경잡기 東京雜記 > >, 『문헌비고 文獻備考 > >와 같은 문헌에는 가면을 쓰고 칼을 들고 추는 황창낭< 黃倡郞 >의 검무가 나오는데, 이 검무가 『삼국사기 三國史記 > >에 나오는 신라 품일장군< 品日將軍 >의 아들 관창< 官昌 >의 고사를 춤으로 엮은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검무는 진연의궤< 進宴儀軌 >와 같은 궁중연향< 宮中宴享 >에 관한 여러 문헌에 보이는 대로 궁중과 관아의 연향에서 연행< 演行 >되었다. 그러나 궁중 검무는 전승이 끊어졌고, 관아에서 연행되던 것 가운데 진주와 통영지방의 검무가 전승되고 있고 이 가운데 진주검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편 검무는 창우< 倡優 >들에 의하여 민간연향의 판놀음에서 연행되었고 이런 검무가 아직도 민간검무로 전승되고 있다. 또 무의식< 巫儀式 >에서 무당이 순박한 칼춤을 추고 있는데 이 춤은 어쩌면 칼춤의 고형< 古型 >의 한 형태인지도 모른다. 진주 관아에는 예로부터 연향에 무원< 舞員 >들이 검무를 추었겠으나 지금 전승되고 있는 것은 진주감영 교방청< 敎坊廳 > 무원으로 있던 최순이< 崔順伊 1892년생 >가 1906년에 서울 진연도감청< 進宴都監廳 >에 소집되어 궁중검무를 학습하고 고종황제 앞에서 연행한 뒤 하향하여 전습시킨 것이라 한다. 최순이의 검무를 이은 이윤례, 김자진< 金子鎭 >, 이음전, 강귀례< 姜貴禮 >, 김순녀, 최례분, 성계옥 등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는데 김자진, 강귀례는 이미 작고하였다. 진주검무는 8명의 무원이 단복을 입고 남색 띠를 띠고 전립을 쓰고 손에 색동 한삼< 汗衫 >을 끼고 한다. 도드리장단에 늘어서서 느릿하고 장중하게 한삼을 뿌리며 춤을 추다가 한삼을 빼어 놓고 맨손을 뿌리며 입춤사위로 추다가 이윽고 엎드려 숙인사위로 어르며 앉은사위로 춤을 추다가 땅에 놓았던 칼을 양손에 갈라쥐고 씩씩한 타령장단에 칼을 좌우사위로 휘두르며 방석돌이로 돌아가며 장쾌하게 칼춤을 춘다. 진주검무는 다른 고장의 검무에 보이지 않는 여러 화사한 춤사위가 보인다. 근래에까지 검무는 굽은 칼을 썼으나 최근 보유자들은 옛날 방식대로 곧은 칼을 쓰고 있다.

 

● 도움받는 자료
○ 문화재 관리국 홈페이지 (www.oc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