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 (鳳山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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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형문화재 제 17호

봉산탈춤은 해서일대(황해도)에 분포된 탈춤 중의 하나로 19세기 말 이래로 해서< 海西 >탈춤의 최고봉을 이루고 그 대표격의 놀이였다. 봉산탈춤의 고장인 봉산구읍< 鳳山舊邑 >은 황주< 黃州 >, 서흥< 瑞興 >, 평산< 平山 >과 함께 팔역지< 八域誌 >의 소위 남북직로상< 南北直路上 >의 주요한 읍< 邑 >과 장터의 하나였다. 이 고장의 이속< 吏屬 >들이 대대로 중심이 되어 이 놀이를 이어왔으나 191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 군청 등 모든 행정기관이 사리원< 沙里院 >으로 옮겨가고 경의선< 京義線 > 철도가 개통되자 약 200여 년 전부터 경수대< 競秀臺 >에서 놀아오던 이 놀이도 사리원으로 옮겨져 경암루< 景岩樓 > 앞 광장에 반원형의 다락을 매고 그 안의 탈판에서 놀게 되었다. 황해도탈춤은 가면, 의상, 무법< 舞法 > 등 형식적인 면에서와 대사 내용으로 보아 평야지대의 봉산탈춤형과 해안지대의 해주탈춤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현재 남한에서는 강령탈춤이 해주탈춤형의 하나로 봉산탈춤과 함께 황해도탈춤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봉산탈춤은 이북지방의 큰 명절인 단오 날 밤에 주로 연희< 演戱 >되던 놀이로서, 길놀이와 고사에 이어 제1과장 4상좌< 上佐 >춤으로 시작되고, 제2과장 팔목중춤의 건무가 있고, 제3과장 사당춤은 사당< 社堂 >과 거사< 居士 >의 춤과 노래, 제4과장 노장춤에서 제1경 노장춤은 노장과 소무< 小巫 >놀이에 이어 제2경 신장수, 제3경 취발이놀이가 있으며 제5과장 사자춤, 제6과장 양반춤의 양반과 말뚝이놀이, 제7과장 미얄춤의 미얄과 영감, 덜머리집과의 일부처첩< 一夫妻妾 >의 싸움은 미얄의 죽음으로 끝나고 지노귀굿을 한다. 이 놀이의 마지막 절차로 예전에는 놀이에 쓰던 가면을 불에 태우고 끝냈다. 이 놀이의 주제는 산대도감계통극< 山臺都監系統劇 >에 공통된 것이다. 단오는 계절적으로 모내기 직전의 한가한 시기요, 이때의 놀이인 봉산탈춤은 곡식의 생장의례< 生長儀禮 >와 벽사행사< 가邪行事 >를 겸하고, 또 하지< 夏至 >의 축제로서 민속적 의의와 종교적 의의가 컸다. 그러나 봉산탈춤은 오늘날 다른 고장의 가면극에 비해 민중오락적 요소가 가장 두드러진 놀이이다. 또 봉산탈춤 대사는 어느 가면극보다도 한시< 漢詩 >구절의 인용과 패러디(Parody)가 많아 지방 이속들이 이 놀이를 세습적으로 전하여왔음을 짐작케 한다. 그 중에서 취발이와 말뚝이 대사가 가장 흥미롭다. 봉산탈춤에서 사용되는 탈은 팔목중 노장취발이탈과 같은 귀면형의 이른바 목탈이 주요한 배역을 맡고 있다. 목중의 기본 의상은 화려한 더거리에 붉고 푸른 띠를 매며 소매에는 흰 한삼을 달고 다리에는 행전을 치고 웃대님을 맨다. 목중춤은 한삼소매를 휘어잡고 뿌리거나 혹은 경쾌하게 휘뿌리면서 두 팔을 빠른 사위로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의 이른바 깨끼춤이 기본이 되는 건무< 健舞 >이다. 등장하는 배역수는 34명이 되나 겸용하는 탈이 있으므로 실제로 사용되는 가면수는 27개가 되며 상좌 4개, 목중 8개, 거사 6개, 소무, 노장, 신장수, 원숭이, 취발이, 맏양반, 둘째양반, 도령< 道令 >, 말뚝이, 영감, 미얄, 덜머리집, 남강노인< 南江老人 >, 무당, 사자< 獅子 > 등이다.

 

● 도움받는 자료
○ 문화재 관리국 홈페이지 (www.oc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