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소리산타령 (선소리山打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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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형문화재 제 19호

선소리는 애초에 사당패놀이에서 발생했다. 산타령< 山打令 >은 여러 소리꾼이 소고< 小鼓 >를 들고 늘어서서 소고를 치고 발림하며 합창하는 민속가요< 民俗歌謠 >를 가리키는데 소리꾼들이 서서 노래한다고 하여 선소리 또는 입창이라 이르고, 또 소리말(가사, 歌詞)이 산천경치< 山川景致 >를 그리는 노래라는 뜻으로 산타령< 山打令 >이라 이른다. 오늘날의 선소리산타령은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로 되어 있으나 이에 대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자들이 부르는 사당패소리에서 비롯하였다. 절에는 비구나 비구니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도수행< 佛道修行 >하는 사< 寺 >가 있고, 사< 寺 >의 곁에는 속가< 俗家 >에 다니며 가무< 歌舞 >로 시주를 걷는 우바새< 優婆塞 >와 우바니< 優婆尼 >를 관장하는 사< 社 >가 있었는데, 이 사< 社 >에 매인 사람들을 사당패< 社堂牌 >라 일렀다. 사당패의 우바니를 사당이라 하고 우바새를 거사< 居士 >라 하였다. 사당과 거사로 구성된 사당패들은 큰 저자로 다니며 판염불(판念佛)을 합창하며 시주를 걷어 절에 바쳐왔다. 조선조에 불교가 쇠퇴하자 사당패는 타락하여 급기야는 남사당< 男寺黨 >으로 대치되고 판염불은 소멸하고 말았지만 이 판염불이 저자의 소리꾼들에 의하여 계승되어 선소리산타령으로 발전한 것이다. 판염불은 남도 소리꾼들에 의하여 남도 선소리산타령으로 발전하였고 경기 소리꾼들에 의하여 경기 선소리타령으로 발전하였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것은 경기 선소리산타령이다. 경기 선소리산타령은 처음 오강< 五江 >의 소리꾼들에 의하여 불리어졌다. 사당패들이 오강의 저자에 다니며 소리하던 것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200여 년 전의 의택이와 종대가 선소리를 잘했고 그 뒤 신낙택< 申洛澤 >이 선소리 명창< 名唱 >이었으며 조선 말에는 서울과 근교에 선소리패들이 여기저기 생겼다. 그 중 뚝섬패가 으뜸이었고, 왕십리패, 진고개패, 호조< 戶曹 >다리패, 삼개(마포, 麻浦)패 등이 뛰어났으며 그밖에 여러 선소리패들이 뒤이어 생겨나 저마다 장기를 자랑하였다. 뚝섬패에서는 이태문< 李泰文 >이 소리를 잘하였고, 왕십리패에서는 이명길< 李命吉 >이, 호조다리패에서는 월선< 月仙 >이가, 과천< 果川 >방아다리패에서는 소완준< 蘇完俊 >이, 그밖의 다른 패에서 이명산< 李命山 >, 김태운< 金泰運 >, 김태봉< 金泰鳳 >이 뛰어난 선소리꾼으로 이름이 났다. 소완준의 제자 정득만< 鄭得晩 >, 이명길의 제자 이창배< 李昌培 >, 김태봉에게서 배운 김순태< 金順泰 >가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나 이창배, 김순태는 작고하였다. 사당패들은 저자에서 시주를 걷기 위하여 판염불을 불렀으나 선소리패들은 답교놀이, 화전놀이와 같이 마을의 축제나 잔치에서 소리판을 벌이고 놀았다. 소리꾼들은 바지저고리에 테머리를 동이고 소고< 小鼓 >를 들고 늘어서고 모갑이는 장고를 치면서 앞소리를 메기면 여러 소리꾼들이 뒷소리를 함께 받으며 소고를 치고 춤을 춘다. 처음에는 느리게 놀량을 부르고, 이어 조금씩 빠르게 앞산타령과 뒷산타령을 부르고 나서, 잦은산타령으로 몰아가면서 소리는 흥겨워지기 시작한다. 끝에는 개구리타령과 같은 장절형식< 章節形式 >의 짧고 빠른 소리로 판을 막는다. 세마치장단이 주가 되나 불규칙한 장단이며 선율은 경토리로 매우 씩씩하고 명랑한 소리이다.

 

● 도움받는 자료
○ 문화재 관리국 홈페이지 (www.oc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