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산조 및 병창 (伽倻琴散調 및 倂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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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으로 연주하도록 짜여진 산조를 가리킨다. 산조란 판소리에서 보이는 남도< 南道 > 향토가락이 4∼6개의 장단으로 구분되는 악장< 樂章 >으로 짜여진 것인데,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으로 구성된 독주형식이다. 가야금병창이란 손수 가야금으로 반주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가야금은 본디 가얏고라 불렸다. 옛 기록에 보면 변진< 弁辰 >에 현악기가 있었고 초기신라에도 현악기가 있었는데 고라 불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야국에서 발전한 고가 가얏고이고 고구려에서 발전한 고가 거문고이다. 가얏고는 가야국 가실왕< 嘉實王 >이 고를 개조하여 만들어서 악사< 樂士 > 우륵< 于勒 >으로 곡< 曲 >을 지어 타게 하였다 한다. 가야금은 고신라에서 가무< 歌舞 >에 썼고 통일신라 때에는 거문고, 비파< 琵琶 >, 대금< 大가 >, 중금< 中가 >, 소금< 小가 >과 함께 삼현삼죽< 三絃三竹 > 음악에 편성되어 가무에 쓰이다가 뒤에는 무용음악보다 가곡합주에 주로 쓰여온 것으로 보인다. 그 뒤에도 민간악< 民間樂 >으로서 줄곧 쓰이어 조선후기에는 거문고, 세피리, 젓대, 해금, 장고와 같이 편성되어 가곡과 현악영산회상< 絃樂靈山會相 > 연주에 주로 쓰였다. 한편 가야금은 민속악사< 民俗樂士 >들에 의하여 시나위나 봉장취< 鳳將吹 >라는 민속악을 탔었다. 조선말기에는 김창조< 金昌祖 >가 시나위음악을 토대로 판소리음악을 도입해서 가야금산조를 연주하여 이름을 떨쳤다. 같은 무렵에 한숙구< 韓淑求 >와 박팔괘< 朴八卦 >가 가야금산조를 짜서 연주하였다 한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한성기< 韓聖基 >, 강태홍< 姜太弘 >, 최옥산< 崔玉山 >, 박상근< 朴相根 >과 같은 많은 가야금산조 명인들이 나왔다. 가야금산조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한숙구 계통을 이은 김윤덕< 金允德 >과 박팔괘, 박상근 계통을 이은 성금연< 成錦鳶 >이, 김창조, 한성기 계통을 이은 김죽파(金竹坡, 본명 김난초 金蘭草)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가 이들이 작고 및 해외이주로 해제되고 지금은 함동정월(咸洞庭月, 본명 함금덕, 咸金德)과 이영희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가야금에는 큰 오동나무를 파서 통을 만들고 한 끝에 양이두< 羊耳頭 >를 달고 열두 줄을 매어 안족< 雁足 >을 고인 정악< 正樂 >가야금과 거문고 통처럼 만든 통에 열두 줄을 매어 안족을 고인 산조< 散調 >가야금이 있는데, 산조는 산조가야금으로 한다. 정악가야금은 규모가 커서 우람한 소리를 내어 정악을 타는 데 좋고, 산조가야금은 규모가 작아서 빠른 가락을 연주하는 데 편하여 산조를 타는 데 쓰인다. 가야금산조는 느린 진양조, 보통 빠른 중모리, 좀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 매우 빠른 휘모리 장단으로 곡< 曲 >을 짠다. 그리고 우람한 느낌을 주는 우조< 羽調 >, 화평한 느낌을 주는 평조< 平調 >, 슬픈 느낌을 주는 계면조< 界面調 >,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경드름 등 여러 정조< 情調 >를 나타내는 조< 調 >의 변화, 촉급한 리듬과 유장한 리듬 등 리듬의 맺고 푸는 변화를 주어서 죄었다 풀었다 하여 희노애락< 喜怒哀樂 >의 감정을 표출한다. 가야금병창은 조선조 말기에 김창조, 박팔괘 등 가야금 명인들이 가야금을 타며 단가< 短歌 >나 판소리 한대목을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그뒤 오수관< 吳壽寬 >, 오태석< 吳太石 >, 강태홍< 姜太弘 >, 심상건< 沈相健 >, 박귀희(朴貴姬, 본명 오계화 吳桂花)가 가야금병창의 명인이었다. 가야금병창으로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병창< 倂唱 >으로 얹어 부른다.

 

● 도움받는 자료
○ 문화재 관리국 홈페이지 (www.oc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