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놀이 (男寺黨놀이)
[사진보기] 

* 무형문화재 제 3호

조선후기에서 1920년대까지도 굿중패 또는 남사당< 男寺黨 >이라고 불리던 전문적인 유랑연예인들이 우리나라 농어촌을 돌아다니며, 민중오락을 제공해왔다. 그들의 주요 상연은 풍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보기(가면무극< 假面舞劇 >) 덜미(꼭두각시) 등으로 재인< 才人 >광대의 가무백희< 歌舞百戱 >의 전통을 이어온 것이었다. 특히 꼭두각시놀음은 주로 그들에 의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어왔다. 이들 연희자들은 인형극을 덜미라고 부르나, 일반적으로는 꼭두각시놀음, 박첨지< 朴僉知 >놀음 또는 홍동지 놀음이라고 부른다. 이같은 명칭은 모두 인형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 인형극은 삼국시대 고구려에 이미 있었는데 대륙으로부터 중국을 거치거나 북방에서 전래된 서역악< 西域樂 >의 일종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점은 고구려 무악 중에 서역에서 전래된 가면무악과도 서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형극은 주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남한 일대에서 유랑연예인 남사당< 男寺黨 >에 의하여 공연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현존하는 꼭두각시놀음의 극본이 형성된 시기는 그 내용으로 보아 조선후기 서민문화의 대두와 때를 같이하여 이루어졌으며, 극본 내용은 산대도감계통극< 山臺都監系統劇 >과 같은 계통의 것이다. 첫째 무속< 巫俗 >과 관련되는 기반문화 요소의 잔존을 볼 수 있으며, 둘째 파계승< 破戒僧 >에 대한 풍자인데 이 두 가지는 모두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 셋째 일부처첩< 一夫妻妾 >의 갈등과 평민층의 생활상, 넷째 양반계급의 횡포에 대한 조롱, 다섯째로 내세의 명복을 비는 불자< 佛者 >에의 귀의 등을 7내지 8막으로 나누어 다룬다. 박첨지가 설명의 역할을 하여 각 막< 幕 >을 이어 일관성을 유지한다. 꼭두각시놀음의 구성은 남운룡< 南雲龍 > 구술본< 口述本 >에 따르면 서막에서 박첨지를 위시하여 전막< 全幕 >의 각 인형을 차례로 포장막< 布帳幕 > 위로 선보이고 나서, 제1막 박첨지 유람가, 제2막 상좌중춤< 上佐중춤 >, 제3막 꼭두각시에서 박첨지와 본처인 꼭두각시와 첩인 덜머리집과의 삼각관계의 갈등에서 꼭두각시는 중이 되려고 입산< 入山 >한다. 제4막 이시미, 제5막 작은 박첨지, 제6막 동방삭< 東方朔 >, 제7막 표생원< 表生員 >, 제8막 깜벡이, 제9막 치도< 治道 >, 제10막 평안감사 매사냥, 이 막에서 양반의 횡포를 보인다. 제11막 평안감사 상여, 이 막에서 양반에 대한 여러가지 모욕이 있다. 종막< 終幕 >으로 절을 짓고, 복을 비는 축원을 한다. 우리나라 인형극의 무대연출방식조종법은 중국의 인형극과 대체로 동일하며, 일본 인형극과도 동일계통이다. 그러나 인형 조종자가 반주음악에 따라 조종과 창과 대사를 겸하는 일인삼역을 하여 일본의 인형극처럼 분화되지 않았다. 무대는 포장< 布帳 >을 치고, 그 뒤에서 조종자가 인형을 포장막 위로 내보내 놀리며 무대와 마주앉은 반주자와 대화를 나눈다. 사용되는 인형은 박첨지꼭두각시, 홍동지, 홍백가, 소무당< 小巫堂 >, 덜머리집, 상좌(2), 평안감사, 상제< 喪制 >, 이시미, 새, 마을 사람(4) 등이며, 상여< 喪輿 >, 만사< 輓詞 >, 법당< 法堂 > 등 소도구가 사용된다.

 

● 도움받는 자료
○ 문화재 관리국 홈페이지 (www.oc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