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오광대 (固城五廣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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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형문화재 제 7호

초계< 草溪 > 밤마리 장터에서 대광대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오광대놀이는 점차 각지에 전해져 의령< 宜寧 >, 진주< 晋州 >, 산청< 山淸 >, 창원< 昌原 >, 통영< 統營 >, 고성< 固城 >, 진동< 鎭東 >, 김해< 金海 > 등지에 분포되고, 해로< 海路 >로 수영< 水營 >, 동래< 東萊 >, 부산진< 釜山鎭 > 등지로 퍼져서 야유< 野遊 >라고 불렀다. 이같이 오광대와 야유는 거의 경상남도 내륙과 해안일대의 각지에 분포되었으나 이 놀이를 받아들인 연대와 경로는 제각기 다르다. 경상우도< 慶尙右道 >에서의 오광대가 전문연예인들에 의해 연희< 演戱 >된 도시의 가면극이라면 주로 경상좌도< 慶尙左道 >에 분포된 야유는 들놀음으로서 비직업적인 연희자들, 즉 마을 사람들에 의해 토착화된 놀이이다. 고성오광대는 초기에 통영오광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지만 오늘날 통영오광대에 비해 보다 더 고형< 古型 >에 가까운 것 같고, 통영오광대는 오늘날에 와서 많이 윤색된 흔적을 볼 수 있다. 오광대라는 이름은 오행설< 五行說 >에서 유래된 오< 五 >에서 온 것이라는 의견이 유력하며 통영과 고성오광대는 놀이 내용도 오과장< 五科場 >으로 구성되어 있어 신라오기< 新羅五伎 >의 다섯마당 놀이와의 연관도 생각케 한다. 그 주제는 산대도감계통극< 山臺道監系統劇 >으로서의 공통성을 지녀 영남의 오광대와 야유의 하나이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심하다. 파계승< 破戒僧 >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널리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약한 편이다. 제1과장은 문둥광대로 문둥광대가 북춤을 추고 퇴장한다. 자탄가는 없다. 제2과장 오광대는 양반들과 종인 말뚝이놀이다. 제3과장 승무는 중 둘과 각시 둘이 나와 춤만 추고 주고받는 대사는 없다. 파계승놀이로서는 상징적이며 퍽 약하다. 제4과장 비비는 통영오광대의 영노탈놀이와 같다. 영노는 일명 비비새라고 하는데 입에서 비- 비- 라고 호드기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제5과장은 제밀주로 영감과 큰어미와 제밀주(또는 작은어미)와의 일부처첩< 一夫妻妾 >의 갈등에서 큰어미가 죽어 상여가 나간다. 큰어미가 물레를 돌리며 노래부르는 대목은 가산오광대< 駕山五廣大 >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통영오광대보다 고형< 古型 >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고성오광대의 연희< 演戱 > 시기도 전에는 세시놀이로서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하여졌으나 나중에는 춘추의 놀이로서 오락화하였다. 고성오광대의 배역은 문둥이 원양반(청보 양반), 젓양반, 젓광대(5명), 말뚝이, 초랭이, 중(2명), 소무(2명), 비비양반, 비비(영노), 영감, 작은어미(제밀주), 큰어미 등 19명이 등장하여 19개의 가면과 아기인형이 사용된다. 고성오광대 가면은 전에는 종이를 풀로 이겨 만든 종이탈이 특색이었으나 근래에는 오동나무로 만든 나무탈을 사용하기도 하고 종이탈, 바가지탈을 쓰기도 한다.

 

● 도움받는 자료
○ 문화재 관리국 홈페이지 (www.ocp.go.kr)